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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시절 슈퍼마켓 아저씨의 트럭을 타고 반나절 동안 동네를 누볐다가 집안이 발칵 뒤집힌 웃지 못할 사연이 있다. 중학교 때 단골 빵집에서 여러 개의 빵을 구입하면, 사장님이 하나 정도는 덤으로 주셨던 기억이 떠오른다. 고교 시절 학교 부근 극장은 ‘동시상영’으로 영화 두 편을 함께 보여주었는데, 반값에 한 편만 볼 수 있게 해달란 청을 했다가 거절당했던 우스운 사건도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앞으로 경험하기 어려울 추억의 편린들이 되어버렸다. 골목상권이 사라지고 있어서다. 그 자리를 대형마트와 편의점, 프랜차이즈 제과점, 멀티플렉스가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는 점점 생존하기 어렵다. 현재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전통시장과 작은 가게들을 살리고자 유통산업발전법은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제한과 의무휴업일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강자를 규제하는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일정 부분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스포츠와 달리 시장경제에서는 체급과 무관하게 모든 선수가 같은 경기장에서 자웅을 겨룬다. 심판이 헤비급 선수에게 체중을 줄이도록 하거나 가끔씩 한 손을 쓰지 못하도록 해도 경량급 선수가 넘어서긴 역부족이다. 경량급 선수의 기술과 체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더 낫다. 핵심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자체 경쟁력을 강화시켜야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골목상권의 부활을 위한 제도적 방안으로 협동조합연합회의 활성화를 제안하고 싶다. 협동조합은 경제적·사회적 약자가 결합하여 공통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법인을 쉽게 만들 수 있는 제도이다.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됨으로써 5인 이상이면 누구나 협동조합을 자유롭게 설립할 수 있다. 하지만 협동조합이 시장에서 단시일 내에 경쟁력을 확보하기는 힘들다. 개별 협동조합들은 시장의 강자와 맞서 경쟁하기 어렵다. 이들이 합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만 기존의 강자와 대등한 경쟁을 벌여갈 수 있다.

협동조합연합회는 셋 이상의 협동조합이 연합하는 것을 말한다. 유사한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모여 산업별 협동조합을 구성하고, 이들이 합세해 연합회를 결성해야 협동조합이 대형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조직과 자금을 갖출 수 있게 된다. 또한 연합회는 1차 산업 협동조합이 생산한 제품을 2차 산업 협동조합이 가공하고 3차 산업 협동조합의 서비스를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구조를 만든다.

연합회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협동조합을 지역별·산업별로, 횡적·종적으로 촘촘하게 연결시킨다. 가령, 밀생산자·농산물유통업자·판매자·제과점이 같은 협동조합연합회에 소속되어 있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유통시설·농산물판매점·제과점의 시설을 만드는 건설업자와 내부를 꾸미는 인테리어업자도 연합회에 참여한다. 건설협동조합이 연합회의 구성원들을 위해 주택을 분양할 수도 있다. 연합회에 소속된 소비자에게는 할인혜택을 주고, 연합회 소속 협동조합이 파산할 경우에는 재기할 수 있는 자금 등을 지원해 주기도 한다. 이러한 연합회는 지역을 넘어 전국적으로 소속 협동조합들을 긴밀하게 연계시켜 준다.

연합회 산하에 있는 협동조합들이 상호 간에 일거리와 인프라를 제공하며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다. 협동조합이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대표적 국가인 이탈리아에서는 레가쿱과 컨프코퍼레이티브 등의 협동조합연합회가 협동조합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실제 협동조합연합회를 통해 경쟁력을 갖춘 이탈리아의 유통협동조합들은 다국적 대형유통업체와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고 않다.

협동조합연합회가 활성화할 수 있는 토양을 구축해야 한다. 2014년 법개정으로 연합회의 공제사업을 허용한 것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지만, 정책적 지원으로 연합회가 공제사업을 통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지역연합회는 연합회의 근간이므로, 지자체는 지역연합회의 토대가 단단하게 구축되도록 독려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지자체 입찰 시 가산점 부여, 지원기금과 교육 등이 구체적 방안이 될 수 있다.

한편, 제도를 악용하려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정부는 연합회의 설립과 활동에 있어서는 규제를 자제하되, 사후적으로 벌칙규정을 통해 연합회에 무임승차해 무위도식하려는 사람들을 강하게 규율해야 한다. 또한 연합회가 카르텔을 통한 가격담합을 하지 못하도록 감독을 해야 할 것이고, 사유화를 막기 위한 임원 임기의 엄격한 제한도 요구된다. 약자들이 뭉칠 수 있도록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김정현 전북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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