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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태어났을 때 나라는 일본 손에 넘어갔고, 그의 아비는 선산까지 팔아 만주로 일본으로 유랑했다. 의지할 데 없던 그는 열두어 살 때부터 일본 사람 집에서 허드렛일을 했다. 그때 일본말을 배웠다. 그는 눈칫밥을 먹으면서 어른이 됐고, 이웃 마을 처자와 혼례를 올렸다. 어찌어찌 남의집살이를 벗어나 집을 얻어 살림을 차린 그는 둘째 아들을 낳고 얼마 뒤 강제 징용돼 일본 광산으로 갔다. 이후 석 달쯤 지나 어린 아들이 사경을 헤맨다는 전보를 받았다. 그는 일본 관리에게 사정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내가 통역을 해줬으니까, 일본 사람들이 내 말을 곧이들었어. 그래서 아들만 살려놓고 바로 돌아오겠다고 했지.” 집에 와서 보니 아프다던 아들은 멀쩡했다. 그의 부인이 아무래도 남편이 못 돌아올 것 같아 거짓 전보를 쳤다고 했다. 그는 그때 돌아오지 않았다면, 다시는 고향 땅을 밟지 못했을 거라고 했다. 살아 돌아온 자는 끔찍한 노역을 해야 했던 광산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는 광복 후 마을에서 일본인들이 내쫓길 때 앞에 나서 그들을 도왔다. “그 사람들도 불쌍했지. 대개 거지꼴로 우리 마을로 들어와 고생하며 살았거든. 그 사람들은 여기 그냥 살게 해달라고 빌었어. 일본 가면 또 거지꼴일 테니 그랬겠지.”

그는 성난 마을 사람들을 다독여 일본 사람들이 무사히 마을을 떠나게 했다. 그는 말했다. 그들은 죄가 없다고. 그는 누구의 잘못으로 힘없는 이들이 강제로 끌려가고, 내쫓겨야 하는지 뻔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일본이 철도를 놔줘서 우리나라가 발전했다는 말을 평생 입에 달고 사셨다. 그 철도 위를 달려 강제 징용되었던 내 할아버지의 말은 어처구니없으면서도 슬펐다. 

오랫동안 그에게 왜곡된 역사 인식을 심어준 것은 국가였다. 국가는 한 개인의 삶에 무책임했을 뿐만 아니라 폭력적이었다. 그런데 강제 징용 배상을 트집 잡는 일본의 행태에 ‘국가의 이익’ 따위를 거론하는 이들이 여전히 있다. 도대체 국가란 무엇인가?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소송을 내 배상받게 된 이춘식 할아버지가 나 때문에 큰일이 벌어지는 것 같아 부담된다고 한 말에 가슴이 아프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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