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기차를 타고 항구 도시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땅끝마을로 가는 내내 나는 동행한 내 아이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 무렵 내 아이는 사춘기를 지독하게 앓고 있었다. 옆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아이에게서 천진한 눈빛으로 툭하면 웃음을 터뜨리던 어릴 적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차창 밖의 겨울 풍경은 아름다웠지만, 아이는 창밖으로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있었지만, 함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 아이가 내달리는 곳, 그곳이 어디쯤인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다.

아이가 핸드폰에서 잠시 눈을 떼는 순간은 또래 아이들이 나타났을 때였다. 버스 안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학생들을 보면서 아이는 여학생들도 교복 바지를 입네, 머리 모양은 어떠네 하면서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아이는 또 입을 꾹 다물었고, 땅끝마을 전망대에 올라가 바다를 바라보면서 기껏 한 말은 배고파였다. 그날 나는 불퉁대는 아이를 땅끝마을 읍내에 있는 학교 운동장에 놔두고 강연을 했다. 도서관을 가득 메운 아이들은 내 아이 또래였다. 강연이 끝나고 질문을 받는데, 남학생 하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저는 잘못한 게 많습니다. 학교에서 하지 말라는 것도 많이 했지요. 저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진지한 눈빛이었다. 그냥 시간이나 때우자고 일어선 게 아니라 아이는 정말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16살의 아이가 잘못 살았다고 반성하는 걸 듣자니 애잔했다. 고작 16년을 살았을 뿐이다, 긴 인생을 생각하면 이제 겨우 걸음을 뗀 것이다, 남에게 해를 끼친 게 아니라면 지금 일탈은 스스로 되돌릴 수 있다. 정말 문제는 어른이 된 뒤에 벌이는 일탈이다. 나는 그리 대답하면서 운동장에 쪼그리고 앉아 있을 딸을 생각했다. 아이들은 괜찮다. 그들은 비뚝비뚝 달리면서 제 걸음을 찾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만한 어른들의 범죄가 끊이지 않아 신문 들여다보기가 겁나는 요즘, 쑥스러운 듯 일어나 자신을 반성하던 땅끝마을의 아이를 생각한다. 아이는 분명 잘 자랐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 같은 어른은 되지 않을 것이다.

<김해원 | 동화작가>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