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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났다. 패럴림픽이 남았으니 아직 끝이 아니긴 하다. 패럴림픽까지 잘 마무리되기를 바란다. 동·하계 올림픽, 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그리고 아시안게임까지. 대형 국가 스포츠행사 유치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나라가 한국이라 하니 뿌듯해야 하는 건지는 내 소관이 아니고 남 먹는 일 구경하고 참견하는 일이 내 공부이니 올림픽 음식에는 관심을 두었다. 외국의 참가인원이 3000여명, 자원봉사자와 운영인력이 8만3000여명인 인구 대이동이다. 이들이 먹고 쉴 수 있게 하는 일이야말로 국가의 역량 문제다.

이번 올림픽 음식의 첫 번째 논란은 자원봉사자와 운영자들, 즉 ‘내부인’에게 먹이는 음식의 부실 문제였다. 대형 급식의 경험을 가진 식품기업들은 사실 빤하고, 한시적 운영이니 이윤을 내는 일이 쉽지 않아 기업들도 나름 고충은 있었을 것이다. 반면 ‘외부인’, 그냥 외국 손님이라 할 수 있는 선수촌 급식은 호평을 받았다. 까다로운 IOC의 기준에 맞춰 400여가지의 다양한 음식을 내어놓았다. 외국 선수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이 ‘한식’이었다는 ‘쌍팔년도스러운’ 멘트가 곁들여지는 것은 필수다.

평창 올림픽의 공식음식인 올림픽 특선은 강원도의 대표 식재료인 감자, 옥수수, 메밀, 평창한우, 황태, 송어 등을 활용한 일종의 퓨전 한식이다. ‘메밀 파스타’나 ‘크림소스 옹심이’ 같은 것들 말이다. 외국인들에게 친숙한 한식을 개발해 우리 한식의 우수성을 알리겠다는 뜻까지 뭐라 할 건 없지만 외국인이 먹기 좋은 음식 개발에 왜 이토록 매달릴까. ‘강릉푸드페스티벌’에서 선보인 올림픽 특선은 막상 일회용기에 초라하게 담겨 나왔다. 음식의 최종 완성은 ‘식기’라 떠들던 개발자들의 자존심 따위는 찾기 힘들었다. 조리시설과 세척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천막에서 무리하게 치러내는 행사여서 그렇다. ‘평창10선’이란 걸 개발해 지역의 식당에 메뉴 전수교육을 해서 외국 손님을 대접한다고 몇 년 부산스러웠는데 그 결과는 어찌 나오려나 모르겠다.

이런 대형 국가 행사가 벌어지면 국가는 국가 홍보 전략으로 당연히 음식을 꼽는다. 음식이야말로 국가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이니까 있던 것은 물론 없던 것마저도 복원하려 든다. 그리고 ‘한식의 우수성을 만방에 고하자’는 구호로 수렴된다. 1988 서울 올림픽 때도 ‘한국음식문화 5000년사’라는 전시회를 열었다가 시쳇말로 ‘폭망’한 적이 있었다. 당시 돈으로도 10억원이나 들인 행사였다. 지금처럼 미라지 제작 기술이 뛰어난 때가 아니어서 진짜 음식을 파라핀 처리해 전시하다, 늦더위에 파리까지(진짜 파리!) 날리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현대의 음식, 즉 식품기업들의 제품 전시회를 여는 동시에 기업의 후원금을 기대하였으나 고사되고 말았다. 슈퍼마켓에 가면 볼 수 있는 제품을 후원금까지 내면서 할 필요가 있느냐며 기업들이 생짜를 놓았고, 결국 반쪽짜리 행사가 되고 말았다. 페스티벌 몇 번 한다고 제 나라 음식의 우수성이 알려질 리가 있겠는가. 헛소동일 뿐이다. 

애써 개발해 놓은 특선 메뉴와 외국 손님이 올까 싶어 좌식 식탁을 입식 식탁으로 교체하고, 영업 역량을 올림픽에 모았던 강원도의 식당들 웃는 소리가 들려오진 않는다. 그나마 선수촌 근처 삼겹살집과 치킨집들이 특수를 누렸다니 다행이려나. 잔치는 끝났고 그들은 떠났다. 이제 무얼 먹고 살아야 할지 한국의 실존 문제가 남았을 뿐이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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