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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일곱 시 전철역 너머 하늘엔 어둠이 번지고 있었다. 전철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 사라졌다. 그들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 그가 있다.
수많은 이들이 잠시 머물렀다가 떠나면서 잊히는 그곳, 전철역 청소 일을 하는 그는 야간 업무를 준비하고 있었다. 야간조라서 낮 한 시에 출근해 밤 열 시에 퇴근한다는 그가 틈틈이 숨을 고를 수 있는 휴게실은 대합실 한쪽에 있었다. 휴게실은 한 평 남짓한 작은 방으로 온돌이 깔린 바닥엔 냉장고와 전기밥솥이 있었다. 아파트 청소하는 이들이 ‘우리 아파트는 전기밥솥을 쓸 수 있다’고 자랑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온종일 밖에서 몸을 움직여야 하는 이들에게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따뜻한 밥이 주는 위안, 그건 아마도 직접 겪지 않고는 알 수 없을 것이다.
작은 방에서 혼자 저녁 식사를 했을 그는 육 년째 이 일을 한다 했다. “어렵지 않은 일이 어디 있어요. 처음엔 화장실 청소가 가장 고역이었지요. 그런데 마음을 돌려먹으니 그것도 쉬워지더라고요.”
그의 말대로 세상이 팽팽 제대로 돌아가는 것은 고역을 참고 감당하는 마음 때문일지 모른다. 오랜 시간 스스로 다잡아온 그 마음을 세상은 가볍게 여기고 홀대한다. 요즘 지하철 청소 노동자들은 휴게 시간을 늘려 임금을 삭감하려는 사측과 싸우고 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노조가 있어야지요. 정규직이 되어 좋아지긴 했어도 부당하게 돈을 깎으려고 하니까 가만히 있을 수 없잖아요. 잘되겠지요.”
그는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지만, 이 세상이 이만큼 나아질 수 있었던 것은 부당한 것을 말하고 싸운 이들 덕분이다. 밥 한 끼 편히 먹을 수 있는 자리를 내달라고, 일한 만큼 임금을 지불하라고,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외친 목소리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왔다.
41년 전 오늘, YH무역에서 일하던 스물한 살의 노동자 김경숙은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썼다. “뉘우치며 삶의 세계를 헤쳐나가며 잘살 수 있는 우리 노동자들이 될 것이다.” 그의 다짐은 분명 세상을 바꿨다. 그리고 2019년 전철역에서 꿋꿋하게 삶을 헤쳐나가고 있는 예순 살 노동자의 싸움도 세상을 나아지게 할 것이다. 그의 싸움이 꼭 잘되길 바란다.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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