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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전 세계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대국을 경이롭게 지켜보았다. 심화학습(deep learning) 기반의 인공지능 알파고가 4승1패로 승리한 이 사건은 인공지능의 무섭게 빠른 발전을 우리에게 각인시킨 계기가 되었다. 전기만 꽂아주면 먹지도, 자지도, 쉬지도 않는 알파고는 하루에 3만 대국을 두며 7개월에 걸친 기존 기보 데이터들을 이용한 지도학습(supervised learning)을 통해 당대 최고의 바둑기사를 이겼다.

그 충격이 겨우 잊혀질 만하던 2017년 10월 네이처지에 발표된 알파고제로는 우리를 한 번 더 충격에 빠뜨렸다. ‘제로’라는 이름이 붙어 있듯이 백지상태에서의 학습을 의미하는데, 이는 알파고가 했던 데이터 기반의 학습이 전혀 없이 딥러닝과 몬테칼로 구조검색이 합쳐진 자체 알고리즘으로만 작동한다. 이러한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 기반의 알파고제로는 알파고를 상대로 100전 100승을 거두었다. 알파고제로는 “이제 나는 인간도, 인간이 만든 데이터도 필요 없다”고 한다. 

물론 우리는 “알파고제로 프로그램은 인간이 만들었다”고 하겠지만,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드는 프로그램이 이미 사용되기 시작한 것을 감안하면 미래에는 인공지능이 인공지능을 만드는 것도 예상된다. 편향되지 않고 충분히 큰 데이터가 있을 경우 지도학습을 통한 인공지능이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방대한 데이터를 만들고, 모으고, 정리하는 것에는 시간과 비용이 드는 것도 기억해 두자. 데이터가 충분히 없는 경우나 데이터가 편향적인 경우에는 강화학습 기반의 인공지능이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인공지능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은 자율주행차, 사람 펀드매니저보다 고수익을 준다는 인공지능 투자매니저, 인공지능 비서 등 이미 다가온 여러 예들을 통해 실감하고 있다. 많은 제조업 공장에서도 인공지능을 이용한 물류 및 제조 최적화를 하고 있으며, 유통업은 인공지능으로 소비자의 성향을 파악해 맞춤형 제안 등을 함으로써 매출 극대화를 이루고 있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답게 얼굴인식 분야의 최고 강국으로 올라섰으며, 이를 범죄자 검거 등에도 활용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연합의 두바이에서도 수천대의 폐쇄회로(CC)TV를 통한 영상 확보와 인공지능을 이용한 자동 얼굴인식 기술로 관광지, 대중교통 등을 집중 감시해 2018년 한 해에만 319명의 범죄자를 검거했다. 이러한 예는 사회 안전에 큰 도움을 주는 것이 분명하지만 개인 사생활 보호 문제 등을 걱정하게 한다.

인공지능은 헬스케어 분야에서도 맹활약 중이다. IBM 왓슨, 구글 딥마인드 등 인공지능이 질병, 질환 관련 영상 판독을 더 정확히 한다는 등의 소식이 계속 들려오고 있다. 

작년 나의 연구실에서는 인공지능을 이용해 약물과 약물, 약물과 음식 간의 상호작용을 예측했다. 이 연구를 하게 된 계기는 미국에서만 한 해에 10만명 이상이 약물 부작용으로 사망한다는 충격적인 통계를 접하고 나서다. 특히 우리가 나이 들어 투약하는 약물의 종류가 평균 5가지나 된다고 하니 약물들의 상호작용에 의한 부작용이 더욱 궁금해졌다.

허가된 약물 2159종에 대해 우선 두 종류의 약물 간의 상호작용을 살펴보고자 했다. 2159종의 약물 가운데 두 가지 약물을 복용할 경우의 수는 232만9561가지가 된다. 데이터베이스와 문헌 등으로부터 두 가지 약물의 상호작용에 의한 19만8284가지의 부작용 데이터를 모았다. 이 부작용들은 ‘A라는 약을 B라는 약과 동시에 투약할 때 심장에 나쁜 영향을 준다’ ‘C라는 약을 D라는 약과 동시에 투약할 때 C의 흡수가 줄어든다’ 등 86가지로 분류되었다. 그렇다면 232만9561가지 상호작용 중 19만8284가지는 알려진 부작용이 있고, 나머지 213만1277가지는 부작용이 없다는 것일까? 

우리는 약물들의 화학구조를 기반으로 구조유사프로필을 만들고 알려진 19만8284가지의 약물-약물 상호 부작용을 데이터로 이용해 신경망을 만들고 지도학습을 시켰다. 

그후 모든 약물-약물 상호작용을 살펴본 결과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48만7632가지의 부작용을 예측할 수 있었다. 물론 이들을 실험적으로 검증한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조합에 대해서는 투약 전에 검증을 잘해야 한다는 것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우리는 “무슨 약을 먹을 때 어떤 음식은 먹지 말라”는 말을 들어왔다. 음식도 우리 몸에 들어가 소화되고 나면 궁극적으로 화학물질이다. 따라서 알려진 모든 약물과 알려진 모든 음식의 성분들에 대한 상호작용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살펴보았다. 그 결과 73종의 음식 성분들이 357종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 쓰였던 430종의 약물의 흡수, 생체사용가능도, 약물 대사 등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는 더 많은 종류의 약물-약물, 약물-음식 상호작용에 대해 보고 있는데, 우리 건강에 중요한 정보와 지식들을 도출해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이 기술은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신약 개발에도 유사하게 적용할 수 있으며, 신약 개발 비용의 절감에도 기여할 수 있다. 즉 전임상과 임상 시 얻은 수많은 데이터들을 기반으로 인공지능으로 미리 분석해 심장독성, 콩팥독성 등 약물독성뿐 아니라 약동력학 등에 기반한 약물 스크리닝도 진행하고 있다. 미래 의료시스템의 핵심이 될 정밀의학과 연계해 인공지능은 더욱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상과 같이 인공지능은 우리에게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고, 예전에는 불가능했던 분석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 주며, 보다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산업, 의료, 교육, 연구, 엔터테인먼트 등 우리가 살고, 일하고, 노는 전 분야에서 변혁을 가져올 것이다. 

세계경제포럼은 2018년 ‘미래의 직업 보고서’에서 인공지능과 기계에 의해 2022년까지 75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동시에 1억330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낼 것으로 예측했다. 이러한 새로운 일자리에 요구되는 분석적 사고, 혁신성, 지속적인 학습전략, 기술 전문성, 비평적 사고, 복잡한 문제 해결, 리더십, 감성지능, 시스템적 생각 등의 능력을 갖추는 것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라 하겠다.

<이상엽 카이스트 특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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