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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세기에 출산을 경험했다. 출산휴가 두 달. 육아휴직이라는 용어는 들어본 적도 없던 때였다. 요즘이야 출산 1~2주 전부터 휴가에 돌입하기도 하지만 그땐 출근길에 양수가 터져서야 병원으로 실려가는 경우도 꽤 있었다. 두 달밖에 안되는 휴가 기간에서 하루도 허투루 빼먹을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 역시 출산 전날까지 출근을 했고, 뒤집기도 못하는 아이를 두고 회사로 복귀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너무 야만적인 환경이었네요.” “출산하고 고작 두 달 만에 몸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나요?” 동정과 놀라움으로 질문을 던지는 여자 후배들 앞에서 나를 포함한 ‘20세기 출산 경험자’들은 무용담을 늘어놓듯 떠들어댔다. 사무실에서 담배도 마구 피워대던 시절이었다는 둥, 유세 떤다는 이야기 듣기 싫어 야근도 다 했다는 둥. 기업의 한 간부는 “ ‘임신=퇴사’였던 때라 6개월까지 임신 사실을 숨겼다”고 해서 듣는 이들을 기함하게 했다.

여러 직종의 20~40대 여성들이 서로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나누자고 모인 자리. 하지만 몇몇이 침을 튀기는 동안 저들의 눈빛은 “그래서요?”라고 되묻는 듯했다. 어쩔거나, 이 싸한 분위기. 예전에 밭 매던 호미로 아이 탯줄 끊고 마저 밭을 맸다는,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 법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느꼈던 시큰둥함. 딱 그것이었다. 그 찜찜함이 느낌이 아닌 ‘실화’라는 것은 며칠 뒤 40대끼리 다시 모인 자리에서 확인됐다. “불편했대요. 자기들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 같았다나 뭐라나.” “우리야 물어보니 옛날이야기를 한 것뿐인데, 좀 어이없고 당황스럽고 그러네요. 예전 상사들에 비하면 우린 정말 괜찮은 편 아닌가요.” “앞으로는 그저 묻는 말에 대답만, 그것도 단답형으로.”

맞장구는 쳤지만 절감했다. 멘토고 뭐고 간에 그냥 우린 ‘꼰대’였던 거다. 조언이나 연륜을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라고 착각했을 뿐, 그저 내면화된 꼰대 근성이었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회사뿐 아니라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다른 엄마들과는 다르지 않으냐”며 확인받고 싶어했고 딸아이는 “도대체 그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거냐”고 되물었다. 난 그럴 때마다 “너희들이 밀레니얼 세대면 난 ‘영포티(young forty)’다”라고 응수했다.

역사상 가장 젊다는 40대. 1970년대에 태어나 1990년대의 문화자본을 충만히 누리며 자란 나이든 X세대들. 그때 데뷔했던 이병헌, 정우성, 박진영이 여전히 대중문화를 주름잡고 있는 모습을 보며 우린 위 세대와는 다르고 젊은 세대와는 통한다고 자족했다. 하지만 ‘영포티’를 다룬 기사에 붙어있던 “그래 봤자 나잇값 못하는 꼰대”라는 댓글이 아프게 와닿기 시작한 것은 얼마 전부터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사안이나 뉴스, 대중문화 콘텐츠에 대해 여혐 문제를 지적하거나 젠더감수성의 부재를 문제 삼는 논의 앞에 말문이 막히는 사례가 잦아졌기 때문이다. 나름 상식적으로 산다고 생각했지만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조차 인지할 수 없는 사안들이 늘어나면서 그저 막막했다. “선배, 이건 정말 문제 아닌가요”라고 심각하게 지적하는 후배 앞에서 “으응, 그러게” 하고 얼버무린 뒤 지적의 핵심을 파악하려 애쓰는 딱한 내 모습은 내게 존재의 의미와 정체성을 매섭게 묻고 있었다.

고민 끝에 얻은 결론은 입을 닫는 것, 그리고 머리와 마음을 여는 것이었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다’는 명제가 천명으로 받아들여지던 시절을 살던 사람들은 아무리 나이가 먹고 지혜가 쌓여도 만인이 평등하다는 사실을 절로 깨치지 못한다. 자신을 내려놓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며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이것저것 책을 사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오른 글을 뒤적이다 눈에 번쩍 뜨이는 제목의 글을 발견했다. 한 온라인 콘텐츠 회사에서 발간한 이 유료 콘텐츠를 덥석 결제했다. ‘요즘 애들의 사적인 생각들’, 궁금하지 않은가.

<문화부 |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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