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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견뎌야 할까. 지난 세기의 책 속에서 몇 가지 그림을 찾아볼 수 있다. 1348년 이탈리아의 피렌체에 치명적인 흑사병이 돈다. 감염되면 사타구니와 겨드랑이에 달걀 크기의 종기가 생기고 온몸에 반점이 나타난다. 증상이 보이면 예외 없이 며칠 안에 죽는다.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사망자가 나오는 가운데 온 도시가 혼란에 빠져든다. 절제된 생활을 하면 병이 피해갈 것이라고 여기고 무리를 지어 은둔을 하는 사람들, 어차피 닥쳐올 죽음을 면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음주와 방탕으로 불안을 달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열 명의 선남선녀가 시골 별장으로 표표히 떠난다.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은 이 귀족들이 각자 하루에 하나씩 열흘에 걸쳐 풀어놓는 이야기를 모은 것이다. 중세사회의 모순에 대한 날카로운 묘사와 당시 성직자들의 위선에 대한 풍자는 이 작품을 근대 소설의 원형(原型)으로 꼽게 하지만, 100개의 이야기 중에 흑사병에 관한 것은 없다. 전형적인 회피의 서사다.

카뮈의 <페스트>는 사뭇 다르다. 1940년대 알제리의 도시 오랑. 죽어가는 쥐들이 등장하고 며칠 후부터 흑사병이 창궐한다. 도시는 봉쇄되고 사람들은 갇힌다. 감염 위험성 때문에 편지 왕래도 금지된다. 우연히 도시를 떠나 있던 가족, 친지들과 서로 안부를 궁금해하는 장면은 요즘의 사정과 별로 다르지 않다. 주인공은 병마가 물러날 때까지 온 힘을 다해서 싸우는 사람들. 의사, 성직자, 자원봉사대원 등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역병을 극복하는 것은 인간의 힘이 아니다. 끝 모를 고통의 시간이 계속되던 어느 날 갑자기 페스트는 홀연히 사라진다.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또 다른 이야기다. 당시로서는 치명적인 감염병을 제목에 달고 있지만 정작 콜레라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고 주인공들의 50년에 걸친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작가는 어떤 상황에서도 일상이 계속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우리가 코로나 시대를 헤치고 나가는 모습이 이런 소설들과 같을 수 없다. 세계화의 시대에 감염병은 지구 어디에나 존재한다. 숨거나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한 없는 봉쇄도 마찬가지. 교역과 분업의 사슬이 끊어지면 먹고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일상을 이어갈 수도 없다. 치료제를 발견하고 백신을 개발해서 자연을 상대로 승리하겠다는 기대를 가질 수 있겠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의학의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의학상 중대한 발견은 과학적 설계와 노력이 아니라 대부분 우연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이 아예 불가능하거나 적어도 몇 년 걸릴 가능성도 생각해봐야 한다.

전문가들은 결국 각국 정부가 단계적으로 봉쇄 해제에 나설 것이라고 본다. 봉쇄와 격리는 감염병 예방에 가장 효과적이겠지만, 동시에 경제활동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코로나19의 치명률이 비교적 높지 않은 점도 그러한 판단의 근거가 될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도 스스로 조심하면서 경제활동에 나서라는 조치를 받아들일 것이다. 수입이 없어진 계층은 정부의 봉쇄조치를 해제하라는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치료제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봉쇄를 해제하는 것은 노년층이나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 등 취약계층의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모험을 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건강하고 젊은 사람들은 코로나19에 걸려도 사망할 위험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이런 조치는 사회 구성원 사이에 깊은 틈새를 만들고 오래가는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범인류적 위기에 대응하는 세계 각국 정부의 모습은 사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실망스럽다. 전문가들은 십 수 년 전부터 전 세계적인 감염병의 유행을 경고해왔고, 그 원인이 될 수 있는 후보 중 1순위로 코로나 바이러스를 꼽기도 했다. 다른 나라들은 몰라도 적어도 미국 등 초강대국은 예측 가능한 위기에 대비했어야 하지 않나. 서로 자국의 방역이 상대적으로 가장 우수하다고 자랑하거나 애매한 봉쇄조치를 해놓고 국민들에게 책임을 미루는 듯한 모습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런 시기야말로 우리가 사는 공동체, 정부, 국가의 역할을 다시 인식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인류는 이보다 덜하지 않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앞으로 급격한 기후변화 등 더욱 상상하기 힘든 위기가 닥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이 시간을 잘 견디고 사회의 시스템을 보완하면 더 어려운 때에도 대비할 수 있다. 토머스 하디는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이 있기를 원한다면 먼저 최악의 상황을 정면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말을 남겼다. 힘들더라도 가장 약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함께 가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함께 이 어두운 시기를 이겨내는 길이다.

<금태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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