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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국민들을 상대로 한 신뢰도 조사에서 항상 꼴지 언저리에 있었다. 지난 정권들은 물론 3년간 입만 열만 검찰개혁을 부르짖은 이번 정부 들어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개검” “떡검” 등 검사들을 부르는 멸칭이 귀에 익숙해진 지도 오래다. 이 정도면 과감하게 검찰을 없애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법도 하지 않나? 민주주의의 선진국이라는 영국에는 1985년까지 검찰이 없었다. 도대체 검사란 왜 존재하는가?

물론 검찰은 필요하다. 이런 사례를 보자. 우리나라에 특별검사 제도가 도입되고 얼마 후 특검보로 선발된 변호사가 강압수사를 했다는 이유로 해임된 일이 있다. 피의자의 발을 걷어차고 소리를 질렀다. 그의 주장은, 변명으로 일관하는 피의자를 상대로 진실을 밝히려는 의욕이 앞서서 그랬다는 것이었다. 충격파는 컸다. 검사나 경찰관도 아닌 변호사 출신 인사가 자백을 강요하다니! 그러나 직접 수사를 해본 입장에서 말하자면, 이런 사례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누구든 용의자를 조사하다보면 사건을 해결해서 피해자의 원통함을 풀어주고 싶은 심정이 든다. 밤을 새워 범인을 쫓는 경찰관이 ‘일계급 특진’만을 노려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요리조리 말을 돌리며 법망을 빠져나가려는 피의자를 다그치는 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정의감 때문이다. 수사가 성공하려면 그런 열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지나치면 인권침해가 벌어진다. 그것을 막기 위한 존재가 검사다. 수사현장에서 한발 떨어져서 피의자와 직접 부딪히는 경찰을 통제하고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기관이 필요하다. 영국에서 뒤늦게 검찰을 만든 이유도 수사 담당자와 기소권을 행사하는 사람을 분리해야 한다는 요청 때문이다.

그런 점을 생각해보면 대한민국 검사의 가장 큰 모순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실제로는 검사가 아니라 경찰관이라는 점이다. 다른 나라에서 경찰이 하는 직접 수사를 도맡는다. 예를 들어 미국 같으면 경찰인 연방수사국(FBI)에서 할 일을 검찰 특수부가 한다. 전 세계 선진국 가운데 소추기관이 이렇게 전면적으로 수사에 나서는 것은 대한민국밖에 없다. 유일한 예외가 일본이었는데 일본 검찰의 특수수사 기능도 이제는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한국 검사들이 한때 경전처럼 끼고 다니던 <동경지검 특수부>(1992년 출간)라는 책은 절판됐고, 이제는 <도쿄지검 특수부의 붕괴>(2010년 출간)와 같은 제목의 책이 돌아다닌다.

그러나 검찰은 여전히 권한을 내려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정치권도 제어에 나서지 않는다. 검찰개혁을 공약한 문재인 대통령과 그에 맞추어 등장한 조국 민정수석 아래에서 검찰은 적폐청산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특수부의 규모와 역할은 과거 어느 때보다 커졌다. 진보나 보수나 검찰의 권한을 줄일 생각은 하지 않는다. 어떤 검사가 ‘정의로운 검사’인지를 놓고 서로 다툴 뿐이다. 지금 전개되는 모습을 보자. 정치권이 둘로 갈라져서 여당은 이성윤 검사 편, 야당은 윤석열·한동훈 검사 편을 들고 있다. 정치인들은 응원단에 불과할 뿐 정작 힘은 검사들이 갖는다. 이러다보니 현직 검찰총장이 대권후보 순위에 오르는 희극이 벌어진다.

윤석열 검찰총장 청문회 당시 윤 총장이 측근으로 알려진 윤대진 검사를 보호하려고 거짓말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가 민주당 정치인들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은 일이 있다. “의리의 총대를 멘 상남자”를 왜 공격하느냐는 것이었다. 같은 정치인들이 지금은 측근인 한동훈 검사를 보호하려 한다는 이유로 윤 총장에게 거센 비난을 퍼붓고 있다. 이것이 과연 공정한가? 그냥 검사들이 우리 편을 들어야 한다고 우기는 것 아닌가?

정권 초 적폐청산 수사로 여권 지지층의 각광을 받던 한동훈 검사는 이제 거꾸로 수사 대상이 되었다. 스스로 구속되거나 기소될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고 한다. 적폐청산을 하는 것도, 적폐청산에 동원된 검사를 쳐내는 것도 모두 검찰에 맡긴다. 한때 그가 차지했던 ‘참검사’의 자리는 한동훈 검사장을 수사하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몫으로 돌아갔다. 제2의 한동훈이다. 그가 말을 안 듣고 ‘적폐검사’가 되면? 다시 제2의 이성윤 검사가 출현할 것이다. 검찰이라는 강력한 칼을 이용하려는 정치권과 그에 부응하는 검사의 조합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검사는 바뀌어도 검찰조직은 건재하게 된다.

때마침 이 모든 일에 큰 책임이 있는 전직 법무부 장관은 자신에 대한 ‘허위 과장 보도’에 대해 형사고소를 하겠다고 공언했다. 검사들에게 또다시 판단자, 심판자의 역할을 맡기는 것이다. 이렇게 검찰개혁의 호기가 지나간다. 검찰의 힘을 빼고, 사회 갈등을 대화와 토론으로 풀도록 시스템을 바꿀 수 있었던 절호의 찬스에서 어떻게 또 검찰에 기대다 이 꼴을 만들 수 있을까. 정말로, 정말로 안타깝다.

<금태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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