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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나도 자기계발서의 독자였다. 뭐라도 붙잡을 게 필요했던 시기였다. 형편이 좋지 않았고 미래에 내가 원하는 내가 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건 현재가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이었다. 희망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 때 자기계발서를 찾았다. 그 안에 어떤 해법이 있을 것만 같았다. 메시지는 단순했다. ‘성공은 습관이다’ ‘소원을 생생하게 그려라. 글로 써라’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 읽을 때는 고통이 잠시 멈추고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흘러도 도로 힘이 쭉 빠졌다.

꿈을 꾸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성취를 이룰 수 있을까. 뉴욕대학교의 심리학자 가브리엘 외팅겐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 <무한긍정의 덫>에서 긍정적 공상의 문제점을 다각도로 분석했다.

긍정적 공상에는 몇 가지 유익이 있다. 현실의 고통을 완화하고 도피의 즐거움을 선사하며 새로운 영역을 탐색해볼 수 있게 도와준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과거 체험과 동떨어진 긍정적 공상은 지속적 동기유발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기운을 빼앗아간다. 왜 그럴까. 외팅겐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면 납득이 간다. 긍정적 공상은 행동의 대타로 기능한다. 소원을 생생하게 떠올리면 뇌는 잠시나마 그 일이 마치 성취된 것처럼 받아들인다. 행동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어서 정보 왜곡이 일어난다. 긍정적 공상을 연장하는 데 도움 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그렇지 않은 정보는 회피하게 된다. 심리적 차원에서만 성취를 즐기는 사이 진짜 현실과 대면하는 힘은 약해진다.

이는 개인적 차원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외팅겐 교수 연구팀은 1993년부터 2009년까지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분석했다. 연설문 속의 긍정적 사고의 정도와 실제 경제지표 사이의 상관관계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대통령의 취임사가 긍정적일수록 임기 동안 국내총생산(GDP)은 더 낮아지고 실업률은 더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통령이 긍정적 사고에 치우치는 것과 경제가 나빠지는 것 사이에 일정한 연관성이 있었다.

우리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선공약은 ‘7·4·7 구상’이었다. 그는 ‘연 7% 경제성장으로, 4만달러 소득을 달성해, 세계 7대 강국으로 올라선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하지만 이 중 어느 하나도 임기 내에 달성되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 임기 마지막 해인 2012년에 경제성장률은 2.3%였고, 국민소득은 2만5000달러 선이었으며 경제 규모는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박근혜 대통령이 표방한 ‘4·7·4 전망’도 마찬가지였다. 박 대통령의 경제팀은 ‘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국민소득 4만달러’를 공언했다. 하지만 임기 막바지에 접어드는 지금, 국민소득은 3만달러 문턱을 못 넘고 있고 경제활동 참가율은 63%에 머물러 있으며 잠재성장률 역시 꾸준히 낮아지고 있다.

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일곱 차례나 ‘꿈’을 언급했다. ‘개개인의 꿈과 끼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풍요롭고 자유롭게 생활하며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새 시대를 열겠다고 큰소리쳤다. 취임 후에도 그의 꿈 이야기는 계속됐다. 작년 어린이날 청와대 행사에서는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다 같이 도와준다. 그리고 꿈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올해 6월에 있었던 제20대 국회 개원연설에서도 ‘취임사는 꿈으로 쓰고 퇴임사는 발자취로 쓴다’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이렇게 긍정 전도사 역할을 자처하는 동안 물밑에서는 파국의 발자취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대통령의 긍정주의는 역사교과서 논쟁에서도 반복됐다. 박 대통령은 자신과 자기 가족의 역사를 ‘긍정적으로’ 왜곡하고자 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자학사관을 긍정사관으로 바꿔 비정상적인 혼을 정상화한다는 기획이었다. 하지만 태생부터 꼬인 국정교과서는 숱한 오류를 낳고 논란만 불러일으켰다. 무한긍정의 역사를 만들면 긍정 일색의 나라가 될까. 부정적인 과거를 애써 외면한다고 대한민국의 장래가 밝아지는 게 아니다. 과오를 인정하고 현실을 직시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역사의 교훈을 잊어선 안 된다. 지나치게 긍정적인 전망을 앞세우는 이가 있다면 그는 실제로 일을 해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법을 무시하고 절차를 생략하며 현장과 소통하지 않는 게 그의 진면목이다. 어쩌면 드라마 속 판타지에 심취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음 대선에서는 현실에 밀착하여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능력 있는 지도자가 선출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자면 언론이 제 역할을 하고 주권자인 국민이 올바르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를 바꾸는 건 지도자의 긍정적 사고가 아니라 국민의 실천적 행동이다.

김성찬 |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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