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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몇 오라기 수염은 더 돋았지만(忽然添得數莖鬚)/ 여섯 자 키는 도무지 더 자라지 않는군(全不加長六尺軀)/ 거울 속 얼굴은 해마다 달라져도(鏡裡容顔隨歲異)/ 철부지 같은 마음속은 지난해의 나 그대로(穉心猶自去年吾)”(박지원, ‘원조대경’(元朝對鏡·설날 아침에 거울을 보며))

아차 하는 사이에 새해 하고도 또 며칠이 지났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에는 일말의 진실이 있다. 새해 첫날에 먹은 마음이 벌써 옅어지는가 싶어 부끄러움을 느끼며 떠올리느니 박지원(朴趾源·1737~1805)의 시다. 박지원은 스무 살을 맞은 설날 아침 거울 앞에 앉았다. 그러고는 위의 시를 읊었다. 새해가 밝았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결심만으로 새로워질 일상은 없다. 시간은 천체의 운행을 따라 흐를 뿐이다. 사람은 구체적인 일상을 살아가며 시간에다 저마다의 매듭을 짓는다. 이 매듭이 모여 역사가 된다. 막연한 작심은 사흘 못 가 풀어지게 마련이다. 하루아침에 나와 사회가 달라지고 새로워지길 바라는 막연한 마음이야말로 철모르는 마음일 테다.

3일 오전 경남 창원시 의창구 주남저수지 일대에서 해군 진해기지사령부 화생방지원대 소속 장병들이 K-10 제독차로 조류인플루엔자(AI)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먹는 얘기를 하자고 해도 그렇다. 지난해 11월16일 전남 해남과 충북 음성에서 처음 발생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는 삽시간에 전국으로 번졌고, 해 바뀐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1월3일까지 닭 2582만마리가 살처분·매몰되었다. 두 달이 못 되는 사이에 전국에서 사육되던 닭 가운데 16.6%를 사람 손으로 죽여 파묻었다는 말이다. 이렇게 죽은 닭 가운데 산란계, 곧 달걀을 받자고 기르던 닭이 2245만마리나 된다. 그러더니 가정에서 그나마 마음 놓고 먹던 단백질원인 달걀을 아끼고, 백반집에서 거저 주던 달걀말이며 달걀부침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사정은 간단하지 않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는 2003년 이래 거의 매해 발생하고 있다. 거의 2년 주기로 몇천만마리의 닭, 오리, 메추리를 죽여 파묻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밀식사육, 곧 햇빛도 들지 않을 만큼 좁은 사육장에 빽빽하게 가금류를 가두어 키우는 방식에 있다는 분석은 진작에 등장했다. 그러나 이렇게 쉽게 말해버리는 것으로 분석을 마쳐도 될까. 달걀로 논의를 좁혀 보자. 정은정 사회학 연구자에 따르면, 오늘날 생산지 일선의 농민이 달걀 한 알을 생산하는 비용은 120원쯤이 된다. 그런데 중간 상인에게 달걀이 넘어갈 때에는 채 100원이 못되는 90원 선에 넘어간다고 한다. 그러고도 한참 더 복잡한 유통 단계를 거쳐 달걀은 우리 밥상에 오른다. 생산자는 가격에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다. 가격 조정력은 유통 부문이 쥐고 있는 셈이니, 농민은 더 많은 닭을 쳐 더 많은 달걀을 받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다.

누구나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같은 복잡한 말을 통으로 외우거나, 몇 년 치 살처분 통계를 일일이 살필 수는 없다. 하지만 상황이 여기에 이르러서도 “그래서 달걀 한 판이 얼마예요?” 말고 다른 의문이 없다면 합리적인 소비를 할 준비도 안된 것이다.

오로지 “얼마예요?”에 갇혀서는 생산의 일선, 방역의 일선에서 지금 죽을 만큼 힘든 사람들이 매일 피땀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살필 수 없다. 그간 우리가 적정한 달걀 가격을, 정말 치러야 할 곳에 치러 왔는가 하는 반성을 할 기회를 잃는다. 그저 “그래서 얼마예요?”가 질문의 전부라면, 그 대답은 “그러면 수입합시다”가 전부가 된다. 이 간단한 대답 뒤에는 그 다음이 없다.

달걀은 그냥 단백질 공급원이 아니다. 거칠게 요약해, 달걀은 한국인이 100% 자급하는 몇 안되는 ‘식량’이기도 하다. 쉬운 결론은 진짜 공부해야 할 데를 아예 가리는 나쁜 결과를 불러온다. 우리는 “얼마예요?”를 벗어나 확인해야 한다. 농민은 그동안 현장에서 100원도 못 받고 달걀을 유통에 넘겼다. 이런 현실이 밀식사육 및 사육두수 조절 실패의 원인일 수 있다. 나아가 한 번 더 물어야 한다. 새해의 달걀 수입이 100% 자급하던 달걀의 생산 기반을 무너뜨릴 위험은 없는지. 몇 달 뒤 달걀값 폭락의 빌미가 되지 않을지. 이 물음 없이 오로지 10년 전과 다름없는 장바구니 달걀값을 바라는 것은 다만 철모르는 마음일 뿐이다. 철모르는 마음으로는 달걀 하나에서도 지난날과 정말로 다른 오늘과 내일을 기획할 수 없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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