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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 첫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그것도 막무가내식의 철도 ‘민영화’ 조치 강행이 몰고온 철도파업과 노동 총파업이라는 파국으로 말이다. 엄청나게 긴 세월이 지나간 줄 알았는데 이제 박근혜 정부의 첫해가 지나간 것에 불과하다니, 남은 4년이 아득하기만 하다.

시급한 것은 ‘철도 쪼개기’라는 변형된 민영화 정책을 넘어서 철도사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그쳐선 안 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는 김대중 정부 이후 추진해왔으며 박근혜 정부가 가속화하고 있는 전기, 철도, 가스 등 국가 기간산업의 민영화, 아니 정확히 표현해 ‘사유화’(민영화는 국가 소유를 사유재산으로 만든다는 privatization을 번역한 것으로 왜곡된 번역의 극치이다)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고 대안을 찾아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반드시 참고해야 할 것이 2001년 캘리포니아의 충격적인 단전사태이다. 캘리포니아는 경쟁체제를 도입해 전력요금을 낮춘다는 명목으로 전기를 사유화했지만 그 결과는 전기요금이 오히려 폭등했을 뿐 아니라 폭리를 위한 전기회사들의 조작에 의해 낙후한 제3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단전사태가 세계 최첨단의 실리콘 밸리에서 벌어졌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이 소동 속에서도 단전사태가 벌어지지 않은 유일한 지역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곳은 전기를 사유화하지 않았던 로스앤젤레스였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당시 김대중 정부는 한전, 철도 등 기간산업의 사유화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었다. 나는 캘리포니아의 UCLA 교환교수로 있으며 이를 생생히 목격했고, 한전 등 기간산업을 사유화해선 안되며, 대안적으로 각계 대표들로 구성된 공기업 개혁위원회를 만들어 합리적인 개혁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여러 칼럼을 통해 주장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한전 사유화 정책들을 계속 강행했고 그 결과가 현재의 전력위기, 나아가 철도사태이다. 예를 들어, 김대중 정부는 한전의 발전부문을 6개로 나누어 분할 사유화시켰고, 그 결과 재벌 발전회사들은 엄청난 수익을 누리고 있는 반면 국민기업인 한전은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

 

(경향DB)

주목할 것은 철도 사유화에 대한 정치권의 공방, 특히 그 중에서도 문재인 의원의 발언이다. 철도 쪼개기와 사유화에 대해 민주당이 반대하고 나서자 여권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이를 먼저 추진해 왔다며 원조 철도 민영화 정권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문재인 의원은 참여정부는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그 전 정부까지 도도하게 이어져 왔던 민영화 흐름을 입법에 의한 철도공사화로 저지했다”고 말했다. 물론 민영화 흐름을 도도하게 추진했다고 문 의원이 지목한 ‘그 전 정부’에는 당연히 현재의 민주당이 뿌리를 두고 있는 김대중 정부도 포함된다. 그뿐만 아니라 참여정부와 문 의원의 변명과 달리 진보진영과 학계에서는 공사화가 민영화의 1단계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점에서 문 의원이 단순히 참여정부를 대변하는 친노의 정파지도자가 아니라 김대중 정부를 포함한 자유주의적 정치세력과 민주당 전체를 대표했던 대권후보였고 또 차기주자라면 김대중 정부는 책임이 있지만 참여정부는 책임이 없다고 발뺌을 해선 안 된다. 오히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추진해온 민영화정책에 대해 총체적으로 반성과 사과를 하고 이번 기회에 기간산업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방안을 논의하자고 제안하고 나섰어야 했다.

사실 사회운동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는 누가 추진했고 쌍용자동차는 누가 해외매각했나? 김대중 정부인가? 참여정부다. 그렇다고 이들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됐을 때 김대중 정부 출신의 민주당 정치인이 그것은 참여정부가 한 것이고 김대중 정부가 한 것이 아니니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그런 사람이 민주당 전체를 대표하는 지도자가 될 수 있겠는가?

한·미 FTA는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핵심정책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이를 재협상하고 본격적으로 시행하자 민주당은 과거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제대로 된 반성이나 사과 없이 반대투쟁에 나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기간산업 사유화의 경우 이 같은 잘못을 반복해선 안 된다. 이번 철도사태를 통해 기간산업의 미래를 살리는 첫걸음은 민주당이 그간의 사유화 정책에 대한 진지한 자기반성과 공개사과를 한 뒤 범국민적인 대안논의를 조직화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박근혜 정부를 압박하는 것이다.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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