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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의원이 본격적인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면서 논쟁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를 지켜보면서 그에 대해 썼던 나의 글들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문재인 바람’이 불기 전인 2011년 여름 그가 차기 야권주자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글을 썼다. 그 이유로 지역주의의 현실 속에서 호남을 넘어 비호남 표를 가져올 수 있으면서도, ‘짝퉁 한나라당’인 손학규 전 의원과 달리 정통성에 하자가 없으며, 친노 중 드물게 품격을 갖추고 있는 점을 들었다.

예측대로 그는 민주당의 대권주자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를 보며 나는 지난해 초 이 지면에서 문 의원이 대선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비전과 정책적 콘텐츠를 갖추고, 노무현을 넘어서야 하며, 권력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충고했다(‘문재인의 운명?’, 2012년 2월27일자). 그가 대선후보가 된 뒤에는 그가 해야 할 제일 중요한 일은 공약을 가다듬는 것도, 안철수와 후보단일화를 하는 것도 아니고 ‘이해찬-박지원 담합체제’로 상징되는 낡은 민주당을 혁신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문재인의 첫 번째 할 일’, 2012년 9월17일자).

 

(경향DB)

그러나 그는 전혀 그러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의 색깔을 보수세력이 그토록 싫어하는 빨간색으로 바꾸고 경제민주화를 주장하고 나서는 등 혁신하고 있을 때 문재인 의원은 민주당을 혁신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 결과는 당연히 패배였다. 국정원의 대선공작과는 별개로, 누가 제 당 하나 바로잡지 못하는 정치인에게 나라를 맡기겠는가.

이로부터 1년 뒤 그는 다시 대권 재도전을 시사하며 정치의 중심으로 재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별로 바뀐 것이 없는 것 같다. 지난 1년간 새로운 비전이나 콘텐츠를 보충한 것 같지 않다. 그렇다고 노무현을 넘어선 것도 아니다. 오히려 NLL 파동을 통해 ‘노무현 지킴이’라는 이미지가 강화되고 말았다. 칼을 갈며 민주당의 혁신의지나 구상으로 무장한 것 같지도 않다. 변한 것이 있다면 딱 하나, 강한 권력의지가 생긴 것 같다. 여당과 야당,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가 국정원 문제 등으로 두 편으로 나뉘어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지금 국면에서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으로 대선 재도전 의사를 표명하고 나선 것이 이 같은 권력의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지금이 대선 재도전 의사를 밝히고 나설 때인가? 본인이 주도적으로 밝힌 것이 아니라 기자의 질문에 답한 것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그런 것을 논할 때가 아니라고 잘랐어야 했다. 또 왜 하필 지금 국면에서 민감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책을 출간하는가?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문 의원의 정치적 감각이다. 정치는 언제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는 타이밍이 중요한 ‘타이밍의 예술’이다. 엉뚱한 타이밍은 이번만이 아니다. 문 의원의 행보를 보면 저렇게 타이밍을 잘 못 맞추기도 어렵다는 탄식이 나올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지난 10월에도 당에 맡겨놓아야 할 권력기관들의 불법 대선개입 의혹에 대해 자신이 직접 공격을 하고 나서 대선에 불복하려는 것이냐는 반격의 빌미를 새누리당에 준 바 있다.

민주당을 수렁으로 몰고 간 NLL 발언을 비롯해 문 의원의 행보를 보면 엉뚱한 타이밍의 엉뚱한 발언으로 새누리당을 위기에서 구해주는 ‘구원투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어 화가 난 적이 여러 번이다. 아니다. 문 의원이 정확히 정치의 타이밍을 읽고 있는지도 모른다. 즉 야권을 대표하는 ‘국민의 지도자’가 아니라 “민주당과 야권이야 망하건 말건, 친노와 나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정파지도자’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고 자신이 뉴스의 중심에 서도록 적절한 타이밍에 ‘노이즈 마케팅’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설사 민주당이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해 정권교체에 실패하더라도 적절한 타이밍에 노이즈 마케팅을 해 반새누리당의 대표주자로 자신을 각인시켜 야권의 주도권을 쥐는 것이 목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품격을 볼 때 그렇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대선에서 47%의 지지를 얻은 그는 야권의 중요한 자원이고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이다. 그런 만큼 정치적 감각을 갖춰야 한다. 또 현안은 당 지도부에 맡기고 민주당 혁신, 노무현 넘어서기, 비전과 콘텐츠 갖추기 등 밀린 숙제들을 해야 한다. 그것만이 2017년에 ‘2012년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는 길이다.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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