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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진보적인 교수들을 만나면 그들이 한국에 대해 공통적으로 부러워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사회운동의 역동성이다. 꺼질 것 같으면서도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한국의 사회운동에 이들은 박수와 존경심을 표하곤 한다. 특히 운동이 거의 죽어있는 일본의 진보진영은 한국의 운동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곤 했다. 사실 이명박 정부 초기에 터져 나왔던 촛불시위에 대해서도 세계의 진보진영이 찬사를 보낸 바 있다. 


그러나 그 같은 찬사를 들을 때면 나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곤 한다. 이처럼 촛불시위와 같은 ‘거리의 정치’가 활성화되어 있는 것이 한국의 자랑인 것은 사실이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한국정치의 낙후를 보여주는 부끄러운 일이라는 주장이다. 그렇다. 툭하면 촛불 시위, 골리앗 투쟁, 이를 돕기 위한 희망버스가 터져 나오는 것은 정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징표에 다름 아니다. 정치의 기능이 무엇인가? 그것은 사회적 갈등의 조정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어느 사회나 계급, 지역, 인종, 세대, 이념, 종교 등 갈등은 있게 마련이다. 이 같은 갈등을 제도적 틀 안에서 조정함으로써 갈등이 폭발하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정치가 할 일이다. 그런데 정치가 그 같은 갈등조정의 기능을 하지 못할 때 사회적 약자들은 골리앗 꼭대기로 올라가고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극단적인 경우는 무장투쟁이라는 선택을 하게 된다.


몇 년 전 정부가 성매수 처벌을 법제화하려 하자 일부에서 풍선효과론을 동원해 반대한 바 있다. 풍선의 한 곳을 누르면 그곳은 들어가는 반면 다른 곳이 팽창되는 것처럼 성매매 단속을 하면 다른 변형된 성매매가 늘어난다는 논리였다. 그 논리를 빌리자면, 사회적 갈등도 풍선효과가 있다. 갈등의 총량은 일정한데 갈등을 제도정치가 해결하지 못하면 그것은 다른 곳에서 팽창해 거리로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역설적으로 표현한다면, 나는 우리의 정치권이 사회적 갈등들을 잘 조정하고 정치가 제 기능을 함으로써 외국에서 부러워하는 촛불시위와 골리앗 투쟁, 거리의 정치가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고 싶다.


이석기 사태에 대해 나는 이 지면에 쓴 ‘이석기를 넘어서’에서 주체사상과 종북주의는 시대착오적이지만 허용해야 하고 사법처벌이 아니라 국민의 선택에 의해 고사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만일 우리가 어떤 사상을 틀렸다는 이유로 금지한다면 언젠가 다른 사람들이 나의 생각을 틀렸다고 금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옳은 주장만이 아니라 틀린 사상도 주장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법원들어서는 이석기의원 (출처 :경향DB)


그러나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한술 더 떠 이석기 사건을 기화로 아예 통합진보당을 해산하려 하고 있다. 이를 보며 우려되는 것이 바로 풍선효과이다. 만일 통합진보당을 해산한다면 그 지지자들은 어디로 가겠는가? 통합진보당 지지자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체사상 신봉자와 종북주의자들인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극소수일 것이다. 그러나 종북주의라고 의심받고 있는 통합진보당의 지지자라는 이유로 통합진보당 당원들과 지지자들을 북한식으로 강제 집단수용소로 보내 사상교화작업을 할 것인가? 지금 정부와 새누리당이 하는 짓을 봐서는 그러지 못할 것도 없다는 걱정이 들기는 하지만, 설마 그러기야 하겠는가.


박근혜 정부에 묻고 싶다. 통합진보당을 해산한다고 그 지지자들의 생각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박근혜 정부가 통합진보당은 해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지지자들의 생각과 사상을 해산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결국 통합진보당을 해산하겠다는 것은 그 지지자들로 하여금 군사독재시절의 급진세력처럼 지하로 들어가 지하당을 하라고 사주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합법정당이 지하로 내려가는 풍선효과만 생길 뿐이다. 사실 우리는 박정희 시절 대표적인 지하당 조직이었던 통일혁명당으로부터 이석기 의원이 관련해 사법적 처벌을 받았던 민족민주혁명당에 이르는 오랜 지하당의 어두운 역사를 갖고 있다. 수만명에 달하는 통합진보당 당원수, 나아가 지지자 수를 고려할 때, 과거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초대형 지하당이 될 것이다. 정부와 새누리당에 묻고 싶다. 정말 다시 낡은 지하당시대로 돌아가고 싶은가?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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