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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원년인 2013년은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문재인 의원의 잘못된 대응으로 일파만파 커져버린 서해 북방한계선(NLL) 논란과 충격적인 국정원 관권선거 개입이다. 그러나 “정치학자로서 박근혜 정부의 원년을 한마디로 요약하라”고 주문한다면 나는 ‘화장발’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 경제민주화론으로 상징되는, 지난 대선과정에서 보여준 박 대통령의 개혁적 보수주의자의 모습은 대선과정에서 자신의 본 모습을 가리고 표를 얻기 위해 덧칠한 ‘화장발’에 불과하다는 것을 지난 1년은 잘 보여주고 있다. 경제민주화 등 선거 때의 화장발은 지난 1년간 다 사라지고, ‘원칙’과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이름 아래 드러난 새 정부의 ‘쌩얼’은 융통성 없는 ‘꼴보수’의 전형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시대착오적인 종북몰이가 자리 잡고 있다. 종북주의와 종북세력이란 ‘북한의 지령을 받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3대 세습, 핵무장같이 북한의 잘못된 정책까지도 (넓은 의미에서) 옹호하는 생각과 세력’을 가리키는 좁은 개념이다. 그 같은 종북세력이 존재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 수는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그리고 이 면에 쓴 칼럼에서 주장했듯이, 종북주의는 시대착오적인 생각이지만 그럼에도 사상의 자유를 인정해줘야 하며 사법적 처벌이 아니라 시민들의 표에 의해 도태시켜야 한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종북의 개념을 제멋대로 확대해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비판적 세력들은 모두 종북으로 몰고 갔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민주당의 햇볕정책도 결과적으로 “북한을 도와줬으니 종북”이라는 식의 논리다. 사실상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에 표를 던진 48%의 국민을 종북으로 몰고 간 것이다. 급기야 가톨릭 원로신부까지도 종북으로 몰고가는 사태로까지 발전했다. 물론 연평도폭격, 천안함사건 등에 대해 언급한 이 신부의 발언은 그 뜻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표현 등에서 매우 적절치 못했다. 그렇다고 원로신부를, 그것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종북으로 몰고 가며 엄벌을 촉구한 것은 창피한 일이다. 이 같은 종북개념의 무한확대와 무분별한 종북몰이는 종북을 희화화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광주 시국회의가 정부와 보수세력의 종북몰이, 협박정치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경향DB)

이석기 사건을 접하면서 진보진영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 사건이 단순한 조작만은 아니고 상당한 실체가 있을 것이며 우려했던 사태가 드디어 터졌다고 생각했다. (사실 민주화진영에서 1992년 대선을 겨냥한 조작사건이라고 주장해 온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사건도 필자가 직접 참여했던 국정원 과거사 진상조사 결과 일부 과장은 있지만 대부분 사실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이제 주체사상파와 통합진보당은 끝장이 났다고 생각했다. 일반시민들도 통진당이 정말 문제가 많은 종북세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나 이후 사정은 급변했다. 가톨릭 사제를 포함해 자신에 반대하는 세력은 모두 종북으로 몰고 가고 종북을 희화화하면서 대중, 특히 야성 유권자들 사이에는 이석기 사건과 통진당은 종북세력이 아니고 시대착오적인 종북몰이에 의한 정치적 희생양이라는 인식이 늘어났다. 박근혜 정부가 자신들의 의도와 달리 다 죽어가던 통진당을 정치적으로 복권시켜준 것이다.

중요한 시금석은 지방선거이다. 이번 지방선거는 야권연대 속에 민주노동당과 그 후신인 통진당이 약진을 한 2010년 지방선거나 2012년 총선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우선 제3의 정치세력인 안철수당이 출현할 것이다. 설사 지난 두 선거에서 위력을 발휘했던 반한나라당, 반새누리당 선거연대가 다시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민주당이 통진당과는 손을 잡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통진당이 예전 같은 성과를 거두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위기에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이석기 사건에 대한 사법적 판결이 어떻게 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같은 사법적 판결 결과와 상관없이 통진당은 박근혜 정부의 무분별한 종북몰이와 종북의 희화화 덕분에 정치적으로는 사실상 이미 면죄부를 받은 것이나 진배없다.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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