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김삼웅 | 전 독립기념관장


 

한국사회에는 오래전부터 대북관계에서 하나의 맹신이 전해온다. 우파(보수)는 안보를 튼튼하게 하고 좌파(진보)는 그렇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역대 독재정권과 그 후예 정당이 선거 때나 정치적 위기에 몰리면 어김없이 안보카드를 꺼내고 대공사건을 확대 또는 날조하여 국민을 겁박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은 지금 대선판에서도 달라지지 않는다.


실제는 어떤가. 보수우파들이 ‘국부’라고 떠받드는 이승만은 입만 열면 “점심은 평양, 저녁은 신의주에서”를 떠들다가 막상 인민군이 남침하자 이틀 만에 서울을 비우고 줄행랑을 쳤다. 그리고 반공의 이름으로 12년 독재를 자행하고 조봉암·최백근 등을 처형했다.


국가안보와 반공국시를 내걸고 쿠데타를 한 박정희는 1968년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 코앞까지 들어와도 몰랐다. 유신쿠데타를 감행하면서는 국민보다 김일성 주석에게 먼저 통보했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유일체제, 남한에서는 유신체제가 수립되어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인권을 짓밟았다.


박정희의 정치적 계승자 전두환은 ‘국가보위’의 명분 아래 정권을 찬탈하여 광주학살을 저지르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국민을 살상했다. 그리고 1983년 버마 양곤 시내의 아웅산 묘소에서 북한 특공대로부터 폭탄테러를 당해 아까운 인재 수명을 잃었다.


김영삼 정부 때에 북한은 1차 핵실험을 하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6·25전쟁 이후 최초의 연평도 포격에 이어 동부전선에서는 북한군이 3개의 초소를 지나 아군 막사에 노크를 하기까지 안보에 구멍이 뚫렸다. 그런데도 보수세력은 자신들이 국가안보의 주체라고 헛소리를 한다. 엊그제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예고를 두고 “북한이 어느 후보를 선호하는지” 운운의 발언을 했다. 그 발언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삼척동자도 안다. 보수세력이 틈만 나면 야당(후보)을 색깔론으로, 선거전을 공안분위기로 몰고자 해온 연장선상이다.


판문각 경비병이 철모를 쓴 채 남측을 주시하고 있다. (경향신문DB)


‘보수=안보, 진보=위기’라는 등식이 얼마나 엉터리인가는 앞의 사례에서 드러난다. 보수정권은 민심을 잃거나 위기에 직면하면 어김없이 공안사건을 터뜨려서 재미를 봐왔다. 사건이 없으면 날조한 건이 수없이 많았다. 최근 속속 진상이 드러나고 있다. 심지어 1987년 대선을 앞두고는 북측 사람들과 만나 선거 직전에 휴전선에서 총격을 가해달라는 흥정을 하기까지 했다.


보수세력이 얼마나 자신감이 없으면 이따위 짓을 하면서 정권을 잡고 재집권을 위해 국민을 속여왔는가를 알게 된다. 북한 또한 마찬가지다. 남한에서 민주화 시위가 절정에 이르거나 주요한 선거 또는 국민투표 같은 것이 있으면 간첩을 내려보내거나 대남 위협발언을 한다. 기다렸다는 듯이 남한의 보수언론이 과장보도를 하고 보수정권은 위기감을 조성한다. 북한 정권은 남한의 민주화 세력보다 독재나 수구 세력을 선호하는 듯하다. ‘적대적 공존’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고 남측의 도발을 핑계로 군과 인민의 통제가 수월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국민은 하도 보수 세력에 오랫동안 당하거나 속아왔기에 이젠 면역이 되어 투표에서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북풍조작 세력을 비토하는 경향도 있다. 섣부른 ‘안보타령’은 역풍을 불러오기 십상이다.


하지만 여전히 벗겨지지 않는 대목은 보수정권이 안보를 튼튼히 할 수 있다는 맹신이다. 오히려 김대중·노무현 진보 정부의 화해협력 구조가 한반도 평화를 담보했다. 대북지원의 수백배를 들여 사오는 무기는 남북 무장대결만 강화시킨다. 


2000년 전에 손무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을 병법의 최상으로 꼽았다. 현명한 국민은 이번 선거에서 ‘거짓 안보세력’의 실체를 깨는 일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