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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책 | 자유경제원장·변호사
안철수? 그는 여전히 의문형이다. 느닷없이 무대에 등장한 작년 가을부터 해단식을 한 지금까지 그는 아직도 모호하다.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패배가 분명할 즈음 그는 출마를 ‘포기’했다. 그의 향배는 참담한 지지층을 움직여 대선판도를 흔들 것이다. 그래서 그의 언행은 신문의 1면을 장식하고 해설기사가 따라붙는다. 종편 채널에서는 정치평론가들이 그가 한 말의 뜻과 눈물의 의미를 해석하느라 여념이 없다. 같은 나라에서 같은 말을 쓰면서 이만큼 다채로운 해석을 낳게 한 이는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아마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안철수 현상이라 말한다. 기존 정치에 염증을 내던 대중에게 변화를 약속한 그가 일으킨 바람이다. 그를 에워싸고 청년들이 환호했고 명망가들이 주변에 모여들었다. 도대체 그의 무엇에 대중은 열광한 것인가? 기껏 ‘삼성동물원’ 같은 몇 개 말의 파편 때문은 아닐 것이다. 교과서에 실렸다는, 엉터리 같은 군 입대 이야기로 포장된 성인(聖人) 이미지만도 아닐 것이다. 막상 그의 ‘생각’이 출간되었을 때 이 정도였느냐며 몇몇은 실소를 머금었지만 대중의 지지는 바뀌지 않았다.
도대체 그를 메시아로 만든 그 ‘무언가’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래서 안철수는 앞으로도 의문형이다. 명색이 문명국에서 특별한 정치적 이념도 없이 결코 정책이랄 수 없는, ‘정권교체’와 ‘정치쇄신’이란 명분만으로 대선판을 혼돈으로 몰아간 현상은 앞으로 정치학의 연구과제가 될 것이다.
그는 왜 정치에 뛰어들었을까? 별다른 내공도 없이 그 흔한 정당도 조직하지 않은 채 겁 없이 정권을 잡겠다고 나선 연유는 무엇일까? 타락한 정치판을 바꿔보겠다는 구국의 일념 때문인가. 캠프에 모인 이들은 모두 그의 신념과 철학에 동조한 이들인가. 아니라면 그가 경원하던 패거리 정치, 계파정치와 무엇이 다른가? 근본적인 질문으로 그가 어떤 신념에 차 있었다면 왜 대선을 완주하지 않았는가?
로스 페로는 성공한 기업인이다. 그는 일렉트로닉데이터시스템이란 컴퓨터 관련 회사를 세워 대기업으로 키웠다. 그는 어떤 공직도 맡은 바 없으며 정치권과도 거리가 멀었다. 그런 페로가 1992년 정치를 쇄신하겠다고 나섰을 때 온 미국의 청년들이 환호했다. 페로는 야당 후보인 빌 클린턴은 물론 현직 대통령인 조지 부시조차 압도했다. 미국은 조지 워싱턴 다음으로 무소속 대통령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본선이 진행되면서 새 정치 지평을 연다는 페로의 야심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정치불신으로 일어난 ‘페로현상’은 페로를 정치불신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그의 캠프는 기존 정치권에 들지 못한 불만에 찬 아웃사이더들로 간주됐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엄청났다. 18.9%의 표를 얻은 그는 부시 대신 클린턴을 당선시킨 일등공신이 됐다.
안철수는 모든 면에서 페로와 닮았다. 컴퓨터 기업인 출신이라는 것에서부터 명성과 부를 얻은 다음 그걸 발판으로 정치쇄신이라는 명분 하나만으로 생소한 정치판에 뛰어든 배짱까지 둘은 붕어빵이다. 다른 게 있다면 페로는 자기 신념에 철저했다는 것이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으며 끝까지 완주해 자신을 지지하는 대중에게 그 책임을 다했다. 그리고 당연히 정치 무대에서 사라졌다. 대통령 출마가 마지막 정치행위가 되어야 패거리 정치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원칙에 그는 충실했다.
안철수가 해단식을 했다. 박근혜, 문재인 두 캠프는 물론 온 국민이 그의 입을 주시했다. 박근혜 캠프로서는 안철수가 조용히 퇴장해줄 것을 바랐을 것이고 문재인 캠프에서는 안철수가 정권교체를 소리 높여 외쳐줄 것을 간절히 빌었을 것이다. 그런 여망을 알면서도 안철수는 여전히 의문부호만 남겼다. 덕분에 기자들과 정치평론가들이 바빠졌다. 그의 신비주의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분명한 건 그는 페로와 달리 정치를 계속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해단식은 숙연한 퇴장의 무대가 아니라 화려한 출정식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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