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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의 영업시간 등을 규제하는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 개정안의 국회 법제사법위 처리가 그제 또 무산됐다. 지난달 16일 지식경제위를 통과한 여야 합의안을 새누리당 의원들이 거부하고 집단 퇴장해버렸다. 밤 10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시간을 제한하면 맞벌이 부부의 불편을 초래한다는 게 그 이유라고 한다. 국민적 관심 속에 수많은 논의 과정을 거쳐 마련된 주요 법안이 또 법사위에서 막혀 연내 처리가 어려워졌다니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유통법 개정안은 고사 위기의 영세상권 보호를 위한 ‘민생 1호 법안’이자 양극화 완화와 상생이라는 시대정신을 담은 ‘경제민주화 1호 법안’이라고 할 만하다. 그만큼 시급성과 상징성을 갖는다. 소관 상임위는 물론 국회 밖에서도 진통과 논란을 거듭한 끝에 마련한 최소한의 상생 법안으로서, 상당한 사회적 합의도 거쳤다고 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소비자의 불편 문제가 논점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우리도 대형마트 규제는 소비자의 상생 인식, 전통시장과 중소상인의 경쟁력 강화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주문한 바 있다. 새누리당이 이런 공론화 과정 속에서 합의한 사안을 이제 와서 원점으로 되돌리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전국경제인연합회나 대형유통업체의 반발을 의식한 것이라면 새누리당은 경제민주화니 상생이니 민생이니 하는 말을 할 자격이 없다. 중소상인들도 지경위를 통과한 유통법 개정안 원안이 기대 수준에 못 미친다고 평가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지식경제부가 주도하고 있는 업계의 자율적 상생 대안 마련도 요원하다. 그제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이달부터 2·4주 수요일 자율 휴무를 실시하기로 하자 전통시장상인연합회 등 중소상인들이 일방적 결정이라고 반발하면서 유통산업발전협의회가 와해될 지경에 처했기 때문이다. 


골목상권과 영세자영업자 보호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특히 강조하는 공약이다. 박 후보는 얼마 전 첫 방송연설을 통해서도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반드시 보호하겠다”고 밝혔다. 새누리당은 바로 다음날 유통법 개정안의 법사위 처리를 무산시켰다. 후보는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살리겠다고 하고 당에서는 이를 위한 최소한의 제도마저 비토한다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박 후보 약속의 진정성을 입증하려면, 그리고 새누리당이 골목상권과 영세사업자를 보호하겠다는 뜻이 진짜 있다면 유통법 개정안부터 즉각 처리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공약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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