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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 모두가 의료비 걱정에서 자유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취지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핵심은 약 3800개의 비급여항목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것이다. 당장 각계에서 재정 마련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이들의 비판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 모든 논의에 앞서 비급여항목 중 꼭 필요한 항목을 골라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항암제의 경우 수천만원에 달하는 고가의 약들도 단 몇 달만이라도 생명을 연장시킨다면 처방을 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그 비용은 건강한 사람들이 부담하는 건강보험료에서 지불되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데 우리는 한번도 그런 논의를 한 적이 없다. 사회 부조의 개념으로 운영되는 건강보험이 구성원들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고 운용되는 경우 부조가 깨질 수 있다. 외국에서는 효능을 보이는 약제도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이유로 불승인하는 일이 종종 있는데 이때 이용하는 개념이 ‘질보정생존년’(Quality-Adjusted Life Year)이다. 한 개인이 질병에도 불구하고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1년에 쓸 수 있는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비용이 얼마인지를 계산하는 이 개념에 따르면, 세계보건기구는 대략 그 나라 평균 국민소득의 3배를 상한선으로 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의료비 상승률이 가장 높은 편에 속하는 우리나라도 이제는 의료가 한정된 재화라는 것을 인식하고 이를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이런 합의가 없는 상황에서 어떤 치료를 급여에 포함시킬 것인지를 정한다면 큰 혼란과 사회 갈등을 조장할 가능성이 높다. 어떤 치료에 꼭 급여가 필요한지를 정하는 것은 전문 지식만으로는 답하기 매우 어렵고 고가의 치료를 위해 너무 많은 재화를 쓰는 경우 다른 치료의 기회비용이 상실되는 결과가 오기 때문이다.

고가 약제뿐만이 아니다. 로봇 수술이나 근골격 자기공명영상(MRI)의 급여화를 하기 전에 우리는 로봇 수술이 정말 비용 효과가 있는 의료 행위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고 근골격 MRI가 얼마나 남용되고 있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상급 병실료의 급여화에 앞서 지금도 싼 병실료 때문에 상급 종합병원의 입원실이 입원이 불필요한 환자들에게도 숙박시설처럼 악용되는 사례들을 막을 수 있는 장치를 생각해야 한다.

<김현아 | 한림대 성심병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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