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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선언 이후, 여기저기서 기대와 불안이 섞인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주에는 일부 의사단체 회원들이 모여 건강보험 개편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전면 비급여를 철회하고 의료수가를 올려달라는 이들의 주장은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결국 이번 일부 의사단체의 ‘투쟁’ 역시 성공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지난 100년간 한국 의사 사회가 이렇게 늘 ‘지는 싸움’만을 해왔다는 것이다. 한국 의사 사회는 우리나라 의료보장제도를 시작할 때 관행 수가의 55%에 불과한 낮은 수가를 채택한 것이 모든 문제의 원죄(原罪)라고 이야기한다. 이 주장은 의사 사회 내에서 서로 인용되면서 강화되어 ‘절대 진리’가 되었다.

의료 과정의 불친절, 과잉진료, 낮은 의료의 질 등 무슨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에 ‘낮은 수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 주장이 일견 타당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함께 이야기해야 할 것이 있다.

우선, 현실에 안 맞는 ‘강요된 낮은 수가’는 ‘독재’의 산물이었다는 사실이다. 박정희 정권은 낮은 수가만이 아니라 의료 부문에 대한 투자도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공공 병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10%조차 안되는 것도 그의 작품이다. 의사가 되는 데 들어가는 돈, 의료기관을 만들고 운영하는 데 들어가는 돈이 대부분 의사 자신에게서 나왔다.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민심 무마책의 일환으로 의료보장제도를 법제화하지만, 그 시행은 1977년이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박정희 정부가 의료보험을 도입한 주된 이유도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 아니라 ‘정권의 정당성 확보’였다. 박정희의 의료보험 시행은 비스마르크의 의도와 흡사한데, 1883년 비스마르크가 독일 노동자의 봉기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유럽에서 제일 먼저 의료보험을 실시한 것처럼, 박정희 또한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노동 평화’를 사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전통은 전두환, 노태우 정권으로까지 이어졌다. 1988년 농어촌의료보험의 실시와 1989년 전 국민 의료보험시대의 개막은 정권의 보위와 정당성 확보를 위한 정치적 결정이었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가 있다. 현재의 박정희식 의료보험체계는 고성장과 완전고용을 전제로 한 비스마르크식 제도이다. 따라서 고령화, 장기적 저성장, 낮은 고용률의 상황하에서 ‘비스마르크식 사회보장체계’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은 제도라는 점이다.

이쯤에서 다시 한번 명토 박아 두자. 먼저, 의사 사회가 그 독재정권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저항했는지 성찰이 필요하다. 또한 박정희 정권은 낮은 수가만을 강요하지 않았다. 실제로는 많은 비급여와 리베이트의 뒷문을 열어주는 방식으로 일종의 ‘담합 구조’를 만들어 냈다. 따라서 한국 의사 사회는 정부에 대한 비판 못지않게, 그간의 역사를 성찰하고 스스로의 변화를 각오하고 이뤄내야 한다. 그러지 않는 한 국민의 지지를 얻기 어려울 것이며 100년이 지나도 여전히 ‘지는 싸움’만을 계속할 것이다. 더욱이 어느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의료보장체계의 개혁은 불가피한 상황이 되었다. 비스마르크와 박정희식 의료보장을 청산하고, 건강권에 기초한 보건의료체계 구축 싸움에 의사 사회가 국민과 어깨를 겯고 함께 행진하는 날을 고대해 본다.

<신영전 | 한양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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