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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파기환송심에서 정치개입과 선거개입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돼 징역 4년을 선고받고 30일 법정 구속됐다. 당초 2심의 징역 3년형보다 처벌 수위가 높아진 것이다. 사필귀정이다.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7부(재판장 김대웅 부장판사)는 원 전 원장 재직 당시 국정원이 장기간 조직적으로 정치·선거에 관여했다는 검찰의 기소 내용을 받아들였다. 헌법 제7조는 공무원을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 규정하고 있다. 공무원은 직무 영역에서 지위 고하를 불문하고 정치적 중립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국정원도 예외일 수 없다. 특히나 국정원은 막대한 예산과 광범위한 조직을 거느린 핵심 정보 기관이다. 국정원이 정치적 중립을 잃는 순간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진다. 그러나 원 전 원장은 정치적 중립 의무를 저버리고 이명박 정부와 여당엔 유리하고, 야당에는 불리한 내용을 인터넷에 전파하며 여론을 조작했다.

원세훈 전국가정보원장이 30일 서울 서초동 고등법원에서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원 호송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30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돼 구치소 호송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대선을 앞두고는 야당 후보 낙선 운동까지 벌였다. 2012년 말에 치러진 18대 대선에서 여당인 박근혜 후보와 야당인 문재인 후보 간 득표율 차이는 3.6%포인트에 불과했다. 원세훈 국정원의 불법 활동이 민의를 왜곡해 선거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재판부는 이날 판결에서 공무원 정치 관여 행위의 기준을 제시했다. 국정홍보성 글이나 현직 대통령을 옹호하는 게시글이어도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지지·반대로 이어지면 정치관여 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서 특정 게시글에 찬성·반대를 클릭한 행위 1200회, 이외의 인터넷 게시글과 댓글 2027회를 정치관여 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또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이 사용한 인터넷 사이트 계정과 트위터 계정에서 이 같은 글 게시와 찬반 클릭이 장기간 반복된 것으로 볼 때 불법 행위가 능동적·계획적으로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원 전 원장은 이런 불법을 저지르고도 북한 선전선동에 대응해 국가안전을 지키기 위한 사이버활동이라고 궤변을 토했다. 문제의 인터넷 글에 대해서는 모르는 일이라며 1심부터 파기환송심까지 내내 부하들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이런 인물이 국정원장이었으니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이라는 원훈에 따라 국가와 시민에게 진실로 충성한 국정원 직원들은 이명박 정부 내내 좌절감이 컸을 것이다.

댓글 사건은 원 전 원장의 범죄 가운데 일부에 불과하다. 검찰은 국정원 직원 외에 민간인 댓글부대 운용 등에도 원 전 원장이 개입했다고 보고 있다. 원 전 원장의 배후에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청와대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국정원 댓글공작을 한 민간인들의 상당수는 ‘늘푸른희망연대’ ‘한국자유연합’ 등 이명박 전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인사가 설립하거나 이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관변단체들인 것으로 이미 드러났다. 박근혜 정부 초기 검찰의 국정원 댓글 수사를 방해한 세력에 대한 수사도 필요하다. 당시 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좌천됐고 채동욱 검찰총장은 내밀한 사생활이 언론에 폭로되면서 사퇴했다. 국정원 적폐청산 TF가 진상조사 중인 이명박·박근혜 정부 국정원 당시 적폐는 13건에 이른다. 성역은 있을 수 없다. 검찰은 국정원의 정치공작을 철저히 파헤쳐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벌해야 한다. 그것이 국정원을 바로 세우고, 추락한 검찰의 명예를 회복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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