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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9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한국은 전후 수출주도로 외화를 벌어 식량·에너지·자원 등을 수입하는 구조로 압축적인 경제성장을 실현해 왔다. 그런데 60여년간 한국을 이끌어온 수출주도형 경제발전 모델을 둘러싼 시대환경이 질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첫째, 수출은 구조적인 한계가 심해지고 있다. 과거 수요가 공급보다 많았던 ‘수요 > 공급’ 시대에서는 만들면 얼마든지 팔리는 수출확대 순환이 성립했다. 그러나 세계 각국이 너도나도 수출전선에 뛰어들면서 이제 세계시장은 수요보다 공급이 더 많은 ‘수요 < 공급’ 단계로 질적으로 바뀌면서 과잉생산 불황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에 맞춰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같이 자국 고용을 지키기 위해 수입에 높은 관세를 매기자는 등의 보호무역 물결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수출에 의한 외화획득이 구조적으로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전망은 수출의존도가 지극히 높은 한국 경제에 치명적인 악재가 될 수 있다.

둘째, 수입금액은 장래 대폭 증가할 수 있다. 과거 한국은 전 세계의 유전·농장에서 에너지·식량을 싸게 대량으로 수입해 왔다. 그 결과 한국의 자급률은 에너지 3%, 식량 50.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 수준이며, 동시에 이 두 가지 품목이 수입대금의 최대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OECD 2050 전망’을 보면 세계 인구는 90억명으로 늘어나 향후 35년간 20억명분의 식량·에너지 추가분이 필요하기 때문에 공급 부족과 수입가격 상승이 예상된다. 이미 일부 국가는 식량파동을 경험하고 해외수출을 억제하는 경우도 있지만, 향후 세계시장의 수급변화는 자급률이 세계 최저수준인 한국에 엄청난 악재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대체로 수출이 증가하고 에너지·식량은 싸게 수입해오던 시대였다면, 앞으로는 수출에 의한 외화 회득이 어려워지는 동시에 에너지·식량 수입금액은 급증할 수 있는 시대환경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중의 악재가 심각해질 경우 당장은 모아둔 외화보유액으로 버티겠지만 얼마 못 가 외화부족으로 수입이 곤란해지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 북한의 에너지·식량난에서 볼 수 있듯이 경제는 괴멸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국민생활과 사회유지에 필요불가결하면서 수입의존도가 높은 에너지·식량을 해외수입에서 국내생산으로 전환하는 ‘에너지·식량 수입대체산업’ 육성을 서둘러야 한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자급률 향상운동 정책 수준을 넘어 산업·일자리의 시각으로 접근해야 실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첫째, 에너지 수입대체산업의 대대적인 육성으로 에너지 자급자족 사회를 형성해야 한다. 한국의 경우 화석에너지 빈국이지만 자연에너지 자원 부국이다. 전국 농산어촌과 도시 단위에서 해당 지역의 특성에 맞는 자연에너지를 최대한 생산하고 이를 지역에서 상호융통하여 소비하는 ‘에너지 지산지소(地産地消)’의 스마트그리드 시스템을 가속적으로 보급해야 한다.

농산어촌의 경우 쓰고 남은 에너지를 도시에 판매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부에서는 신재생에너지 설치가격 보조 등의 제도혁신을 통해 보급을 촉진하면서, 태양광·풍력·지열·바이오에너지·연료전지 등 에너지 기기 및 소재산업 육성을 전력 지원해야 한다.

둘째, 식량 수입대체 산업 육성과 자급률의 획기적인 향상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신규 취농 및 제품판로 지원의 확대에 더해 새로운 ICT농업, 유기농업 등을 비롯한 차세대형 6차 농림어업을 대대적으로 도입하여 청년들도 농림어업에 참여하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정부에서는 시장원리를 중시하면서도 장래 식량 수입가격 상승에 사전 대비하는 비용이라는 관점에 서서 농림어업 보조제도를 확충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먹거리 산업 육성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이러한 에너지·식량 2대 수입대체산업 육성과 일자리 창출은 국민의 에너지·식량 안보를 강화하면서 특히 피폐한 농림어촌에 새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동시에 최대 비중을 차지하는 에너지·식량의 수입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 한국 경제를 내수·수출 균형의 경제체질로 전환하는 물꼬를 트는 마중물 사업의 역할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정선철 | 한신대 초빙교수·사회혁신경영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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