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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6일 현충일, 정태용 작가가 2005년 독일이 마지막 분단국가인 우리의 통일을 염원하며 서울시에 기증해 청계천변에 설치된 베를린장벽에 그라피티를 그렸다. 검찰은 이를 범죄행위로 간주해 징역 1년을 구형했고, 서울시는 작품 복구비용과 복원할 수 없는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감안해 작가를 상대로 3000만100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시는 “사회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고 있는 방종한 행위”에 “엄격한 법적 제재를 통해 사회적으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러나 가혹하고 지나치다. 작가는 이 장벽이 역사적 상징물임을 인지하며 태극기의 문양과 색채를 변형한 기호를 만들어 올해 남북정상회담을 축하하는 동시에 사회적 갈등으로 남아있는 이산가족과 통일 문제를 시각화했다. 작가는 서독인들의 감정이 쌓인 장벽의 가치를 존중하며 작품을 완성했다. 따라서 그라피티는 서울시가 근거로 들고 있는 (문화재보호법이 아닌) 형법 제141조 2항의 공무소에서 사용하는 건조물 등을 파괴하는 행위라기보다 서독인들의 감정을 함축한 흔적의 효용성을 극대화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장벽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고 있었고, 외부 방치로 서독 시민들의 흔적 역시 물리적으로도 지워지고 있었다. 청계천변을 오가던 행인들의 낙서는 꾸준히 제기되는 또 다른 문제였다. 따라서 진정 ‘훼손’을 막고자 했다면 서울시는 보존시설을 갖춘 내부에 장벽을 보관했어야 했다. 정태용 작가의 그라피티는 방치돼 잊히고 지워지고 있었던 장벽의 역사적·문화적 효용성을 일깨우는 예술적 의견이기도 했다.

이 외에도 서울시는 이 사건을 외교적 결례로 간주하고 있으나 베를린시 측은 문제 해결을 전적으로 우리에게 맡겼다. 베를린시 측은 서울시 측에 보낸 서신에서 “서울시에 기증된 베를린장벽의 부분들의 소유권은 서울시에 양도”되었으므로 그 장벽을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가에 대한 특별한 조건들은 없”다, “(훼손된) 장벽 부분들을 새롭게 복원하거나 원형을 유지하면서 복원하거나 또는 채색해야 하는가는 서울시가 결정할 문제”라고 했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그라피티가 그려지기 전으로 되돌리는 것만을 올바른 문제해결로 인식, 그라피티를 지우고 서독 시민들의 흔적을 ‘흉내 내’ 복원하기에 급급했다.

장벽의 가장 큰 의미는 분단국가 시민들의 공통적인 감정 공유였다. 이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접근법과 감상법의 문제는 여태껏 논의되지 않았다. 서독 시민들의 흔적을 눈으로만 감상하게 할 것인지, 자유롭게 접근하도록 하여 두 국가의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교감하게 할 것인지 등은 이 장벽을 포함한 문화적 상징물 향유에 있어 매우 논쟁적인 사안일 것이다. 또한 그라피티가 그려지기 전에도 베를린장벽은 행인들의 낙서로 가득했다. 장벽 복원을 최상의 목표로 설정했다면 복원 시점을 언제로 정할 것인지, 복원을 위한 처음의 상태가 무엇을 말하는지, 처음 상태로 복원하는 것이 가능한지 등을 논의했어야 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한다면 정태용 작가의 그라피티는 범죄나 훼손이 아니라 베를린장벽의 역사적·문화적 가치의 효용성을 우리들이 어떻게 활용하고 유지할 것인가를 논의할 적절한 계기였다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오경미 | 한예종 미술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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