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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일로 분주한 한낮에 아내가 전화를 해왔다. 평소 묻거나 알릴 얘기가 있으면 문자메시지를 이용하는 터라 전화를 받을 때부터 무슨 큰 사달이 났나 싶어 긴장이 되었다. 아내는 화를 억누르느라 거의 울먹이는 상태로 말했다. “엄마가 햇볕이 안 든다고 집을 나가시겠대.”
인근에 홀로 살던 장모님과 합친 지 한 달째였다. 딸만 둘인 처가인지라 연세가 더 드시면 두 딸 중 한 집이 모시는 게 당연했고, 처형네보다는 우리가 그나마 형편이 맞았다. 근처로 당신이 이사를 올 때부터 조만간 모셔야겠거니 생각했으므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한 달 이상 부부가 땀을 빼며 방방마다 묵은 살림을 정리하고 장모님을 맞았다.
거의 매일 귀가가 늦는 터라 장모님과 저녁밥상에 마주앉는 적이 드물었는데 나도 그날은 작심을 하고 일찍 퇴근했다. 장모님도 눈치를 챘는지 식탁에서 말없이 수저만 옮기셨다. 된장국에서 주뼛주뼛 김이 피어올랐다.
그놈의 감나무가 문제였다. 창밖에는 잎이 넓고 무성한 감나무가 적의 장수처럼 버티고 있었다. “이보게, 늙으면 햇볕이 더 필요한 법인데 이렇게 어두컴컴한 방에서 나는 지내기가 힘드네. 내가 혼자 더 있다가 양로원이나 갈 것을, 생각이 이렇게 짧아가지고….” 아내는 그렇다고 관리실에 우리 것도 아닌 감나무를 잘라달라니, 노망이 드셨냐고 난리 난리였다. 다 망해버린 처지에 평생 부잣집 마나님처럼 남들 주무르는 버릇을 못 버린다며 엄마에게 진저리를 쳤고, 장모님은 장모님대로 한 번도 고분고분 말 듣는 법 없이 시건방진 딸 부부에게 속이 상할 만큼 상하신 듯했다.
집이 아파트 1층이라 볕이 잘 안 드는 게 사실이었다. 대신 넓은 공용 화단을 내 정원처럼 즐기며 살았다. 여름에는 녹음이 우거져 집에 온 손님들이 감탄을 하곤 했다. “어머니가 오뉴월쯤 이사해야 하는데 하필 늦가을에 오셔서 이 모양이 되었다”고 눙치고 지나가려 했지만, 원인이 다른 데 있는 게 분명했다. 서로를 뜻대로 다스리지 못해 쌓인 울화가 애먼 감나무에 가서 불이 붙은 셈이었다. 구질구질한 살림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들어와 욕심을 부리는 엄마가 햇볕 욕심까지 부리는 것을 딸은 견디지 못했고, 엄마는 사사건건 당신 인생을 무시하려고 드는 인정머리 없는 딸 때문에 속상해했다.
나도 비겁했다. 딸과 제 친엄마 일이니 나는 당사자가 아닌 양 슬쩍 비켜서서는 불똥이 튈세라 피해 다녔다. 사위가 밥상머리에서 되지도 않는 훈계를 장모님께 늘어놓았다. “어머니가 딸과 사신 세월보다 이제는 저희가 산 세월이 더 길어요. 둘은 남이에요. 사는 방식을 새로 맞춰야 할 남이라고요. 생판 남에게 이렇게 자기주장 내세워 싸우면 다시 보지도 않을 텐데, 내 딸 내 엄마라 생각하니 선을 막 넘잖아요.” 장모님과 아내는 오랜만에 얼굴 마주해서는 또 가르치려 드는 ‘맨스플레인’ 사위가 기가 찼을 것이다. 둘은 입을 닫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모녀 갈등에 머리가 아파서 친구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포기하라”는 충고가 대뜸 돌아왔다. 그 연세 노인네들은 절대 안 고쳐진다. 손에 움켜쥔 돈도 절대 놓지 않고, 자기 습관도 절대 안 버린다. 우리는 살날이 꽤 남았지만 그들이 이제 와서 뭘 고치려 하겠나.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
이야기가 번졌다. 태극기부대가 괜히 탄생한 게 아니다. 평생 이뤄놓고 키워놓았더니, 조금 배워먹었다고 자기들을 무시하고 시건방 떠는 아이들이 얼마나 밥맛이 없을까. 아이들이건 나라건 자기들 소유물로 생각하는 세대다. 국가주의의 출발은 다 가족주의야. ‘개인’을 모르고 살아온 세대 아니겠나. 무슨 고생을 또 그리 했다고 지나간 일을 자기들 신화로 과장하는데, 자식들이 집안에서조차 얌통머리 없는 민주적 원리를 주장하며 제 잘난 줄만 아니 얼마나 재수가 없겠나.
친구 얘기에 기타노 다케시가 했다는 그 말, “어디 보는 사람만 없으면 내다 버리고 싶은 게 가족”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세대의 경험을 다시 한 번 반추했다. 확실히 개인의 반대말은 집단이 아니라 가족인 모양이다. 나와 너를 절대로 따로 인정하지 않는 가족이 원흉이다. 개인을 인정하지 않고는 성립할 수 없는 민주적 원리 따위를 가족에게서 꿈꾸니 이 모양이 된 걸까?
죽일 듯 싸우던 우리 부부도 이제 세월의 지혜를 얻었는지 더 이상 싸우지 않고 서로의 공간과 시간을 인정한 게 겨우 몇 년째다. 서로 가족을 망가뜨리지 않으리라는 믿음도 꽤 쌓였을 것이다. 다시 여기까지 가려면 우리 집 모녀든 다른 누구든 꽤 긴 연습이 필요하리라. 감나무부터 탓하지 말고.
<안희곤 |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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