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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화를 추진하는 데 있어 상시적인 업무를 하는 기간제(계약직) 노동자만이 아니라 파견·용역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정규직화를 추진하여 이전 정부와 차별적인 모습을 보였다. 많은 이들이 공공기관에서 비정규직을 남용하는 잘못된 관행을 바로 세우는 정부정책에 박수를 보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안정되게 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고용노동정책의 대전환이 자회사라는 도전 앞에 위기를 맞고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파견·용역의 정규직 전환은 직접고용, 자회사, 사회적기업 등으로 할 수 있으며 이 중 자회사는 모기관의 특성, 조직규모, 업무특성을 고려하여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지난 국정감사에서 이용득 의원은 파견·용역 노동자 중 자회사로 전환된 인원이 50%에 이른다며 자회사가 남발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사례를 보니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철도공사 등 용역 규모가 큰 곳만이 아니라 용역 규모가 수십명에 불과한 공공기관에서조차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화를 선택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자회사는 모회사의 정책방향에 의해 사업내용, 경영관행, 인사관리 등 모든 영역이 결정된다. 자회사의 설립이 모회사의 정책적 필요에 의해 이루어졌듯이, 이후 자회사의 폐지도 모회사의 정책방향에 의해 가능하다. 물론 정부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말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자회사로의 정규직 전환은 고용안정을 위한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반박하는 노동자 측의 주장은 적어도 공공부문 지배구조만 보면 사실이다.

그런데 필자가 생각하는 자회사의 더 큰 문제점은 그 안에 배제의 논리가 있다는 점이며 이는 비정규직의 정규직정책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현재 파견·용역 노동자는 모회사에 직접고용으로 전환되더라도 동일한 업무를 하는 정규직이 없는 한 대부분은 무기계약직이나 별도의 직군으로 전환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기존 정규직들의 직급이나 처우와는 많이 다르며 이는 비용면에서 자회사 방식과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공공기관들이 직접고용 대신 자회사를 밀어붙인다. 때로는 용역노동자의 규모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때로는 용역노동자의 규모가 너무 적다는 이유로, 때로는 미래의 비용이 늘어난다는 이유로, 때로는 정규직 노조가 반대하는 논리로 자회사를 강요한다. 겉으로는 노사전문가회의를 통해 정부정책을 따르는 것처럼 위장하지만 내면에는 파견·용역노동자를 동료로 인정할 수 없다는 강한 배제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스무명 남짓을 왜 자회사를 만들어 정규직화로 전환하려는지 설명되지 않는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이 중반부를 넘어 최종 결승점으로 달려가고 있다. 정부는 정규직화의 원칙과 취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끝까지 정책을 점검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 정규직 전환은 직접고용을 원칙으로 하고 자회사 방식의 전환을 매우 예외적으로만 허용해야 한다. 이 경우에도 자회사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용역회사가 자회사로 이름만 바뀌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둘째, 자회사 관련 쟁점이 좁혀지지 않는 발전5사, 도로공사, 잡월드 등 대형공공기관에 대해서는 노사전문가협의회에만 맡겨 둘 것이 아니라 정부차원의 적극적인 지원과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해결을 꾀해야 한다. 셋째, 생명·안전업무는 자회사가 아닌 직접고용이 원칙이지만 정작 생명·안전업무에 대한 범위가 모호하여 갈등만 커지고 있다. 정부가 생명·안전업무인지에 대한 개념과 업무범위를 정확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채용비리 관련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일부 채용비리건을 빌미로 정규직화 사업 자체를 자초하려 하거나 자회사로의 전환을 강요하는 일이 없도록 지도·점검해야 한다.

모든 일은 시작보다 끝맺음이 어렵다. 비정규직을 만나 눈물을 닦아주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도 끝맺음이 아름다워야 한다.

<정흥준 |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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