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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계집애가?” 그 한마디와 부라린 눈, 올라가는 손이면 충분했지. “걸레 같은 X.” 조롱 섞인 한마디면 충분했지.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어” “그냥 박아버려” “사흘에 한번 줘 패야 맛”이라며 희희낙락하는 것만으로 충분했지. 나는 두려웠어. 그건 행동지침이었기 때문이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얼굴, 가슴, 엉덩이, 손, 발, 피부색, 머리모양, 부위별로 품평하던 너희들 앞에서 나는 매일 고깃덩어리가 되어야 했지. 늘 너희들의 평가에 신경 쓰며 움츠리고 살아야 했지. 그래도 소용없었지. 이어지는 물리적 폭력과 성폭력은 내가 누구인지 더 깊이 더 아프게 각인시키는 방법이었지. 그래도 너희들은 정당화했지. 남자들의 성욕은 참을 수가 없다고, 반드시 누군가를 대상으로 배출해야 한다고. 아니, 나를 사랑해서 그런다고.

너희들에게 인정받아야 생존할 수 있음을 터득한 나는 살기 위해 매일 조이고 닦고, 바르고, 칠하고, 조신하게 걷고, 예쁘게 웃고, 눈웃음 치고, 분위기를 조심히 살피고, 눈을 내리 깔고, 잘난 척하지 않고, 적당히 모른 척하고, 말수를 줄이고, 마침내 진짜 멍청해졌지. 네가 원할 때마다 얌전히 옷을 벗었지. 매일매일 스스로를 훈육해 너희들이 좋아하는 유순한 몸과 마음을 갖췄지. 그렇지 않은 여자들을 너희들과 함께 비웃으며 차별화하려 했지. 그래도 소용없었지. 아니 더 문제였지. 너희들의 밥상과 술상은 물론 길거리와 공공장소, 야동으로 포장한 불법 영상물이 넘치는 곳, 남초 사이트라 명명되는 곳까지 나는 그저 부위별로 찢긴 먹잇감이었지. 너는 나를 남성연대가 찬란하게 빛나는 도살장에 넣어 두고 돈을 벌고 있었지. 피해를 호소하며 그만두어 달라는 나를 창녀, 더러운 X, 도발했다, 유혹했다, 원래 이상한 여자였다며 다른 남자들과 한통속이 되어 짓밟았지.

나는 이제야 알았어. 너희들에게 인정받는다는 게 뭔지. 아름답다는 감탄사의 의미를, 이면의 욕망을, 그 욕망이 펼쳐지는 장들을, 이후의 효과를. 욕망할 만하다고 여겨지는 모든 ‘여성적인 것’은 강간해도 되고, 그렇지 않은 모든 건 두들겨 패도 된다는 너희들의 생각을. 어쨌든 둘 다 짓밟히는 건 매한가지라는 걸. 그 둘은 사실 한 몸이라는 걸. 그냥 그게 너희들의 문화였고 관행이었고 사실은 너희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걸.

그래서 나는 너희들과 안 만나기로 했어. 머리를 잘랐어. 화장도 그만두고, 갖고 있던 속옷도, 하이힐과 짧은 치마도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어. 더 이상 너희들의 시선강간의 대상, 먹잇감이 되고 싶지 않아. 내 몸이 편안해지고, 움직임이 자연스러워지고, 정신이 예리해진 느낌이 들자 나는 책을 펼쳐 들게 되었지. 수백년 전, 다른 공간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 여성들을 만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어. 억압되었던 마음의 소리들을 느끼며 나를 길들였던 수많은 이데올로기의 실체를 깨달았지.

물론 나를 옥죄던 극심한 공포와 불안에서 완전히 해방된 건 아니야. 너희들은 세상 대부분의 권력을 쥐고 있고, 나의 모든 걸 망칠 수 있을 만큼 거대하고 힘이 세다는 걸 알고 있어. 여성성에 대한 신화와 이를 위반한 자에 대한 징벌은 여전히 가혹하고, 조롱과 모욕은 일상이며, 폭력과 차별은 현실이기 때문이지. 나는 여전히 어두운 골목 안에 서 있는 너희들의 실루엣만 봐도 경기를 해. 두려움은 그냥 예민한 감정이 아니야. 너희들의 몸이 곧 무기라는 사실을 평생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지. 여전히 밤늦게 귀가할 때는 친구들에게 택시번호를 알리고,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뒤를 돌아보며 휴대폰을 손에 들고 있어야 하지. 택배를 받을 때면 여자 혼자 사는 곳이 알려질까 ‘개가 짖으니 문 앞에 두고 가라’고 메모를 남기고, 너희들의 속옷과 신발을 사서 베란다에, 현관에 놓아두어야 해. 끔찍하지만, 현실이야. 오늘도 나는 ‘여자냐, 남자냐’고 물으며 뒤돌아보며 헛웃음을 치고 대놓고 욕하는 너희들을 마주하고, 머리가 짧다는 이유로, 화장을 안 한다는 이유로 해고당해야 했지.

나는 이제 회피하지 않고 용감해지려고 해. 더 이상 도망갈 곳도 물러날 곳도 없어. 목소리를 일부러 높이고 눈을 더 크게 뜨고 네가 손을 올리면 나도 맞받아치려고 해. 얼굴이 째지고, 머리가 터지고 이빨이 부러질지도 몰라. 어쩌면 죽을지도 몰라. 그때도 너희들은 너희들만의 세상에서 “맞을 만한 짓 했다”며 우릴 조롱하겠지. 그래 나도 알아.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적폐, 가장 오래된 갑질, 남성에 의한 여성 지배와 통제의 역사는 언젠가는 막을 내릴 것이고, 내적 붕괴는 이미 시작되었다는 걸. 그때까지 우리는 밟혀도 밟혀도 일어나고, 죽어도 죽어도 되살아나, 아무리 늦더라도 다시 너희들 앞에 나타날 거야. 이 글을 읽는 너희들은 지금도 찌질한 댓글이나 달고 있겠지만, 나는 이미 혼자가 아님을.

<이나영 | 중앙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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