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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기고]‘4월15일’의 기억

opinionX 2015. 4. 13. 21:00

4월16일은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이 시점에서 ‘4·15의 기억’을 들추는 일은 시의에 어긋나는 행동이 아닐지 조심스러운 마음도 든다. 그렇지만 이 일 역시 생명의 존귀함이나 시민의 권익 그리고 국가의 존재 의미를 연상케 한다는 점에서 세월호 사건과 시공을 초월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1961년 4월15일자 경향신문은 서울 남산에서 있었던 행사를 어떤 신문보다 비중 있게 다루었다. 이날의 행사란 ‘4·19공원’을 조성하기 위한 기공식이었다. 공원은 ‘민주’ ‘정의’ ‘자유’의 기치를 천명한 4·19혁명의 정신을 기리고 희생된 시민열사들의 묘역을 겸하기 위해 준비됐다. 서울시가 뒤늦게 참여했지만 이 사업은 원래 순수 민간단체에 의해 주도된 사업이었다. 이 일을 주도한 선두에는 경향신문이 있었다. 당시의 경향신문은 1년 동안 폐간이라는 극형을 받고 있다가 갓 풀려난 상태였다. 1959년 4월 이승만 정부는 미군정 법령을 차용하면서까지 경향신문에 족쇄를 물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한 신문을 폐간시키기 위해 대한민국이 수립되기 이전의 군정 법령까지 동원했다는 것은 자존심 있는 정부이기를 포기한 처사였다. 결박했던 쇠사슬을 끊고 경향신문을 다시 언론 본연의 자리로 되돌아가게 만든 주인공은 4·19혁명이었다. 이러한 인연 때문에도 경향신문은 4·19 기념사업의 선두 역할을 자임했을 것이다.

서울운동장에서 거행된 4·19혁명 1주년기념 행사에 앞서 남산에서 가진 4·15 기공식은 민간이 주도하는 작은 행사로 치부될 수도 있으련만 여기엔 국무총리를 비롯해서 3부 요인과 1000여명의 시민도 자리를 함께했다. 오늘날 남산에선 ‘4·19공원’을 기억할 만한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이렇게 된 이유는 남산의 기공식이 있은 지 한 달 뒤 한강을 건넌 5·16 정치군인들 때문이었다.

서울에 진주한 쿠데타 세력들은 4·19정신을 계승한다고 했지만 이들이 19년 가까운 통치기간에 보인 행동은 4·19혁명을 폄하하고 그 지위를 빼앗는 것이었다. 쿠데타를 미화하기 위해 4·19는 마치 혼란의 진원지인 양 매도됐고, 그들이 전복시킨 장면 정부는 무능한 정권의 대명사로 선전됐다. 4·19혁명 이후 시민들의 불만과 요구가 터진 봇물처럼 분출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배경으로서 민족이 겪어온 역사적 수난을 우선 고려해야 할 것이다. 봉건적 전제 지배와 외세의 침입, 일제 식민통치의 착취와 억압, 민족의 분단과 6·25참변, 자유당 정권의 횡포와 부정 등등. 이 같은 억압과 시련이 이어진 역사 속에서 시민 대중이 모처럼 신음 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은 4·19혁명이 기폭제 역할을 해준 덕분이었다.

세계 민주시민의 역사에서 4·19혁명은 가히 독보적이다. 혁명의 과정과 성취라는 점에서 이웃한 중국과 일본은 물론 유럽의 역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 1961년 공원의 위치를 서울의 상징이자 중심인 남산으로 지정한 것이라든지, 4월15일 기공식에 시민과 정부 요인들이 대거 참석한 것은 그만큼 4·19혁명이 지닌 가치와 위상을 인식한 때문일 것이다. ‘4·19공원’ 조성을 주도한 경향신문 역시 폐간에서 풀려난 상태에서의 일시적 충동이나 흥분에 이끌린 것은 아닐 것이다. 4·19가 큰 혁명으로 평가돼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부정한 정권을 타도하고 새로운 민주정부를 수립한 사실 때문이 아니다. 민주시민으로서 의무와 권리의 실행은 기본 덕목이자 가치일 터인데, 이 점에서 4·19혁명은 시민들에게 더할 수 없는 귀한 교훈을 제공한 때문이다.

60년 4.19 혁명 당시 가두 진출하는 고대생들 (출처 : 경향DB)


세월호 사태를 보면서 우리에게는 시민의 참정권은 물론 원초적 생명권마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절망감이 든다. 이 같은 잔인한 세월에 4·19혁명을 그리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4·19의 부활에 대한 기대, 이것이 1961년 4월15일의 경향신문을 새삼 떠올리게 되는 이유이다.


권오중 | 전 영남대 교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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