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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세 서점을 살리고 거품 낀 책값을 바로잡겠다는 취지로 마련된 도서정가제가 시행 5개월 만에 위기에 빠진 모양이다. 최근 민음사 계열인 비룡소, 미래엔, 삼성출판사, 시공사 계열 시공주니어, 김영사 계열 주니어김영사 등 주로 대형 출판사들이 홈쇼핑 채널을 통한 도서 할인 판매에 나서는 등 도서정가제 취지에 반하는 행태를 보여 논란이 일고 있다. 또한 알라딘, 인터넷 교보문고, 예스24 등 주요 인터넷 서점들도 사은품 증정 등 ‘꼼수’ 마케팅으로 도서정가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는 것이다.

도서정가제 전면 시행을 강하게 요구했던 출판인들이 스스로 제도 취지를 훼손하면서 기존의 할인 마케팅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물론 해당 출판사들은 규정을 어긴 적이 없다고 항변한다. 정가제는 도서 정가의 15%까지만 할인이 가능하지만 세트 도서로 판매할 경우 예외 규정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대형 출판사들이 정가제의 허점을 파고들어 제도를 무력화시키는 행태는 출판계 합의 정신을 깨는 일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사실 이런 결과는 제도 마련 때부터 예견됐다. 정가제가 편법 할인, 경품 제공, 처벌 기준 등에서 불완전하고 허점이 많아서다. 현재 반쪽짜리 도서정가제를 보완하는 버팀목은 출판·유통업계의 ‘자율협약’뿐이다. 그동안 정부가 “도서정가제가 연착륙했다”고 홍보했지만 현장의 평가는 정반대다. 대다수 출판사들은 불황의 늪에 빠져 있다. 독자들은 가격은 내리지도 않고 할인제도만 없앴다고 비판한다. 혜택을 볼 것이라던 중소 서점들조차 정가제가 되레 손님을 쫓았다고 불만이다.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을 하루 앞둔 지난해 11월20일 서울 시내 한 대형서점에서 시민들이 마지막 할인 행사에 들어간 도서들을 살펴보고 있다. (출처 : 경향DB)


이번 대형 출판사들의 ‘일탈’도 아동출판 매출 감소에 따른 자구책이었다고 한다. 출판사들이 대형서점에는 싸게, 일반서점에는 비싸게 책을 공급하는 것도 문제다. 도서정가제가 결국 대형 출판사와 대형서점, 인터넷 서점의 배만 불릴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도서정가제로 출판시장을 살리겠다고 나선 정부의 안이한 발상에서 비롯된 정책 실패라고 본다. 지금이라도 출판사와 서점, 독자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도서정가제가 되도록 관련 규정의 허점을 확실히 보완하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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