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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참사, ‘관피아’ 문제 드러내
공직자 가족 관련 직무 제한 법안
정치·언론계 ‘연좌제’ 억지 주장에
3년7개월 만에 ‘누더기 법’ 통과


1950~1960년 미국 연방정부 내에서 트루먼과 아이젠하워가 지명한 고위 공직자들이 연루된 몇 건의 이해충돌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러자 1960년 뉴욕시 변호사협회는 시대에 뒤떨어진 윤리규정 때문에 이해충돌 문제를 제대로 막지 못한다고 지적하며, 의회와 대통령이 주요 윤리규정들을 개정해 연방정부의 윤리시스템을 조사하고, 선물 수수나 외부 고용 등 이해충돌 방지와 관련한 새로운 윤리규정을 마련할 것을 권고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권고에 따라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은 윤리규정들을 포함하는 연방정부의 윤리 프로그램의 효과성을 개선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들을 마련했다. 이어서 미국 의회도 1962년 10월23일 뉴욕 변호사협회의 권고를 상당부분 수용한, 20세기 가장 중요한 입법의 하나로 평가되는 ‘연방정부의 뇌물 및 이해충돌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고, 케네디 대통령은 이날 법안에 서명했다. 이후 이 법은 정부윤리법(1978), 윤리개혁법(1989) 등으로 진화했다. 이 법률들을 관통하는 핵심은 다름 아닌 이해충돌의 방지다.

2015년 3월3일 우리 국회 본회의에서 법 하나가 통과되었다. 명칭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전체 재석의원 247명 중 226명이 찬성했으니 외견상 국회의원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 법이 처음 입법예고된 것은 2011년 8월이니, 장장 3년7개월 만에 제정되었다. 이 법이 2013년 8월 정부에 의해 국회에 제출되었을 때의 원래 명칭은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이었다. 공직자의 부당한 청탁 수수를 금지하고, 이해충돌이 있는 직무의 수행 등을 방지해 공직자의 부패를 막고, 정부의 신뢰를 확보하려는 법이었다. 부정 청탁은 이해충돌의 가장 부정적 상황이라는 점에서, 부정 청탁의 금지와 이해충돌의 방지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특히 이해충돌 방지는 공직자 윤리를 확보하기 위한 가장 핵심적 규정으로, 이미 주요 선진국에서는 일상화된 규정이다. 그런데 김영란법 제안 당시 우리나라에는 이해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제대로 된 규정이 없었다. 공직자윤리법과 부패방지법은 명칭은 그럴 듯했지만, 이 법에서는 이해충돌 방지와 관련한 제대로 된 규정을 찾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해충돌 방지를 핵심으로 하는 김영란법은 우리나라 공직윤리 관리의 큰 허점을 메울 수 있는 법이었다.

그런데 이 법이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오랫동안 잠자다, 지난해 4월16일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관피아’ 문제가 부각되면서 국회에서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른바 세월호법으로 논의가 시작되었다. 세월호 참사의 구조적 원인의 하나가 바로 이해충돌에 대한 부적절한 관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논의는 이상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입법 논의과정에서 김영란법의 가장 중요한 이해충돌 방지 부분이 제거되었으며, 법안에서 명칭마저 제거되었다. 공직자 가족의 직업선택권 제한 등 위헌 시비가 일면서 삭제된 것이다. 김영란법 원안은 공직자 가족의 취업 제한이나 가족 관련 직무수행의 제한은 이해충돌이 존재하는 경우만 예외적으로 적용됨에도, 국회와 언론은 모든 공직자와 가족에게 일상적으로 적용되는 것으로 설명했다. 이 법안을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할 일부 국회의원조차도 방송에서 공공연히 공직자 가족의 취업을 금지하는, 공직자 가족이 선물을 받으면 처벌받는다는 연좌제법이라고 억지 주장을 했다.

이런 주장은 대세가 되었고, 국회는 김영란법의 핵심인 이해충돌 관련 규정을 제거한 채 나머지만으로 법을 통과시켰다. 명칭도 바꾸었다. 그런데 지금도 국회와 언론은 이 법을 김영란법이라고 부른다. 이제 이를 김영란법이라고 부르지 말기를 요청한다. 김영란법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세월호법이라고 부르지 말기를 요청한다. 세월호법도 아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인 이해충돌의 효과적 관리방안을 제거했기 때문이다.

법 통과 후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가 이해충돌 관련 규정의 제거를 심각한 입법의 흠결로 지적하자, 국회는 뒤늦게 이 규정을 다시 법에 추가하겠다고 한다. 언제가 될지 모를 일이다. 이해충돌 방지 규정이 없는 이 법은 김영란법이 아니다. 세월호 이후를 변화시키겠다는 세월호법도 이젠 아니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10일 서울 서강대 다산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회를 통과한 ‘김영란법’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출처 : 경향DB)


미국 의회는 1962년 ‘뇌물 및 이해충돌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킨 것을 20세기 들어 가장 잘한 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로부터 50년 이상이 지난 2015년, 우리 대한민국 국회는 이해충돌 방지를 목적으로 하는 김영란법의 제정을 거부했다. 세월호 이후 대한민국은 변할 수 있을까? 국회는 세월호가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지 벌써 기억조차 못하고 있다. 아직도 팽목항에는 선명한 노란색의 리본들이 수도 없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윤태범 |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실행위원·한국방송통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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