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지지난 주말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평소 목이 약한 아이는 여지없이 고질병인 급성 인후염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요즘 유행하는 독감은 아니었으나 요란한 기침소리에 아이가 받는 따가운 시선이 불편하기도 했고, 집에서 쉬면서 증세가 호전된 뒤 등교를 하는 편이 좋을 듯해 학교를 보내지 않았다.

사흘을 쉰 아이의 증세는 예상대로 많이 호전돼 오랜만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었다. 그런데 마침 그날은 학년 말 학예회가 있는 날이었다. 아이들은 각 반 선생님들의 인솔하에 차가운 강당 바닥에 앉아 있었다. 방석을 준비한 아이도 있었고 마스크를 쓴 아이도 있었으나, 절반이 넘는 아이들이 찬 바닥에 앉아 대기하고 있었다. 요즘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기침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마스크를 씌운다. 가정통신문을 통해서 독감이 유행이니 사람이 많은 밀폐된 곳에 가지 말 것, 마스크를 착용할 것, 개인 위생을 철저히 할 것 등 지침을 알려오기도 했다. 각자가 스스로를 돌보고 다른 친구들에게 전염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보건교육은 아이들에게 당연히 필요하다.

그런데 독감으로 전 교육기관이 비상인 이 시점에 굳이 아이들을 차가운 강당 바닥에 앉히고 공연을 보게 하는 일은 바람직한가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한 선생님은 이에 대해 “공연을 준비한 학생들의 사기 진작과 행사 취소로 인한 아이들의 실망감을 고려해 행사를 취소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선생님은 독감 대비책으로 강당에 모인 전교생이 마스크를 쓸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 강당에 모인 아이들의 모습은 달랐다.

불편한 일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날 오후 아이 친구 엄마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큰맘 먹고 특급호텔을 예약했는데 큰아이가 A형독감 진단을 받았다는 것이다. 모처럼의 가족 이벤트를 취소해야 하는 상황을 위로하는 말을 건네려던 순간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타미플루를 먹으니 열도 떨어지고 아이 컨디션도 좋은데 수영장은 이용하지 않고, 객실에서 쉬다가 뷔페식당 가서 밥이나 먹어야겠다. 괜찮겠지?”

그 순간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특별한 마음으로 예약해둔 특급호텔 여행을 포기하기는 많이 아쉬웠으리라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독감 판정을 받은 아이를 데리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호텔에 가겠다는 그의 행동은 시민의식의 결여인가, 양심의 문제인가? 감염병은 발병 당시 당국의 초기 대응과 함께 타인에게 전염시키지 않겠다는 본인의 주의가 절실하다. 그렇지 않으면 전염 확산을 막을 수가 없다. 독감이 메르스같이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국가적 질병은 아니지만, 전염성이 무척 높고 치료가 제때 이루어지지 않으면 폐렴이나 여타 합병증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본인이나 가족이 질병에 걸려 일정 기간 요양 혹은 간호를 해야 할 경우 이를 인정하고 휴가를 주는 학교나 기관이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갑작스럽게 아이를 맡길 대안을 찾지 못해 아이가 어지간히 아픈 경우 질병을 속이고 등원 혹은 등교를 시키는 경우도 있다. 결국 감염병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시민의식이 절실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아프면 출근·등교하지 않아도 되는 합리적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박지영 | 주부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