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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무를 가장 좋아하세요?” 간혹 이런 질문을 받는다. 내게 이 질문은 아이들이 받는 “엄마 아빠 중 누가 더 좋아?”라는 질문만큼이나 답하기가 난처하다. 나무를 공부하면서 기회 있을 때마다 한 이야기 중 하나가 나무에는 참으로 다양한 모습과 사연이 있으니 한 면만 보고 생겨난 선입견으로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를 가르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대답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나무가 아니라 내 자신에게 시선을 돌려 본다. 그때 생각나는 나무는 전나무이다. 처음 공직생활을 시작할 무렵, 어려움이 있을 때 일손을 놓고 막막한 마음으로 2층 연구실 창문에 서서 밖을 내다보면 가장 먼저 내 눈길을 잡는 나무가 바로 전나무였다. 곧게 자라 진한 초록빛의 싱그러운 잎새들을 달고 있는 전나무를 보면, 저절로 위로가 되고 불끈 용기도 생기곤 했다. 그래서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나무는 그냥 전나무가 아니라 ‘연구실 창 밖에 서있던 바로 그 전나무’였다.
그런데 요즈음 예측할 수 없는 어려움에 처한 세상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다시 전나무들이 마음을 두드린다. 전나무에서 일생 동안 푸르름과 올곧음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기 때문인 것 같다. 곧게 자라는 늘푸른 나무의 위용으로는 금강소나무가 단연 최고이다. 그런데 소나무들은 그 자리를 떠나 장소를 옮겨 씨앗을 심으면, 그 위치에 맞게 자란다. 때론 운치있게 구불거리는 모습으로, 때론 바위틈에 살아가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거듭난다. 참으로 멋진 가치이지만 요즈음은 왠지 쓰러질지언정 굽지 않는 전나무의 올곧음에 더 마음이 간다.
봄을 맞아 짙푸른 잎새 끝에서 선연한 연둣빛으로 자라난 전나무 새싹.
푸르고 곧게 자라기는 잣나무도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막상 잣나무숲에 가 보면 위로 올라가던 가지가 중간쯤에서 갈라져 두 개의 줄기로 자라는 모습이 자주 눈에 뜨인다. 사람들이 잣송이를 따려다가 줄기의 끝에 상처 입히면, 나무의 키를 위로 키우는 끝눈이 손상되고 옆에 대비하고 있던 두 개의 다른 눈(芽)이 끝눈의 기능을 대신해 위로 자라기 때문이다. 사실 잣나무가 이러한 수난을 당하는 일은 잣이라는 열매를 만들어 너무 유용하게 쓰이기 때문일 것이다. 쓸모 있음으로 해서 손을 타는 것은 재주 있음으로 유용한 사람이 되고 노출되어 유혹에 빠져버리는 사람들의 이치와 비슷해 보인다. 전나무가 오래 자라도록 기다리면 올곧은 나무는 결국 크게 자라 기둥이 된다. 양산 통도사나 강진 무위사의 기둥 일부가 바로 전나무이다.
식물들은 햇볕이 있어야 광합성을 하므로 수많은 생장은 햇볕과 연관된다. 그런데 양지만을 따라서 이리저리 움직이지 않고, 오래도록 그늘에서 잘 견디며 살아가는 전나무의 특성도 마음을 끈다. 이렇게 그늘에서도 견디는 나무를 음수(陰樹)라고 한다. 다른 큰 나무의 그늘 안에서 오래도록 잘 견디노라면 때가 오고, 더 이상 가릴 것이 없는 때가 되면 전나무는 햇볕을 충분히 받아 도약한다. 모든 것을 계산하느라 대의와 진정한 가치를 잃어버리는 여러 사람들과 전나무는 대비된다. 전나무는 오염에 약하다. 그래서 도심에 가로수로 심기 어렵다. 한때 아무 곳에나 자라지 못하는 전나무의 까다로움이 마음에 걸렸으나, 이 즈음엔 오염에 순응하지 않는 전나무의 자세에 마음이 간다.
내가 정말 전나무를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새순에 있다. 의연함과 강직함을 가진 전나무이지만 새봄이 오면 겨우내 더욱 짙푸르러진 잎새 끝에서 새싹이 올라오는데 얼마나 부드럽고 연하며 맑고 선연한 연둣빛을 띠는지! 이것을 보노라면 진정으로 존경받을 수 있는 훌륭한 사람은 마음속이 사람과 자연에 대한 따뜻한 연민과 사랑으로 채워져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속세의 때를 한참 묻힌 나는 스스로 전나무처럼 되는 바람은 포기하더라도, 적어도 내 가슴속의 전나무는 잘 키워보고 싶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마음 한편에서 굴곡되고 오염되고자 하는 나를 깨워 방향을 잃지 않도록 말이다. 전나무로 만드는 크리스마스트리에 반짝이는 불빛을 달게 된 사연엔 옛날 북유럽 숲속 요정들이 나무마다 차례로 불을 밝혀 길 잃은 착한 소녀의 아버지를 이끌어 주었다는 이야기가 숨어있다.
혹시 지금 방향을 잃고 있다면 여러분도 마음에 전나무 한 그루 심어 불빛을 항상 켜놓으시길 권해본다. 그 빛이 다가오는 새해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줄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올 한 해를 잘 정리하기 위해서도 전나무 구경이나 전나무길 걷기는 안성맞춤이다. 오대산 월정사길, 부안 내소사길 그리고 내가 일하는 국립수목원 전나무 숲길이 특별히 유명하다. 올곧게 자란 전나무로 가득 찬, 나무향 그윽한 길을 걷노라면 몸과 영혼이 맑아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유미 | 국립수목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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