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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해 한국 시민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수구집단이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후 장기집권을 위해 반동적 개헌을 추진할 것을 미리 걱정했던 필자의 어리석음을 통쾌히 배반하고, 4·13 총선은 우리에게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혹자는 총선 결과에 대해 김종인 당시 민주당 비대위원장의 역할을 이야기하고, 호남 정서를 담아낸 안철수 의원의 정치 감각을 평가하기도 합니다만 정치인들이 버릇처럼 과시하는 소리에 불과합니다.

‘촛불혁명’은 동학농민혁명과 4·19 시민혁명, 1987년 민주항쟁의 맥을 이어가면서 스스로 진화하고 새로운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일어선 시민들의 모습을 ‘자각된 주권’ ‘시민운동 4.0’이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일시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의 위치에서 누적되었던 판단들이 계기적인 현실 상황을 인지하면서 분노와 각성으로 결집되어 형성된 것입니다. ‘이게 나라냐’로 상징되는 시민들의 요구와 갈증은 단순히 박근혜와 주변의 부역자들을 처벌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역사적인 새로운 질서가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죠.

이에 반해 제도정치권 영역은 70여년 전 해방 정국 당시 미숙함과 반쪽짜리 정부 수립 과정의 유치한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후하게 점수를 준다 해도 겨우 ‘제도정치1.5’ 수준으로 판단됩니다. 이처럼 정치가 후진적인 배경에는 분단과 민족동란, 냉전체제와 군사쿠데타, 개발독재와 정경유착이라는 외적 조건이 있습니다. 그러나 헌정사를 유린한 유력 정치인들의 정략적 탐욕에 더해 국민을 위한 정책을 중심으로 운영하지 못하고 그들의 이해에 머무는 현재 정당 수준이 큰 원인입니다. 선거철만 되면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한국 정치에는 불행하게도 정당다운 유력 정당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노자는 물이 낙차를 따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법칙을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했습니다. 세계사적 수준에 이른 한국 시민정치와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제도정치의 커다란 격차는 전자의 주도성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기 위한 시대적 과제에 대한 성찰적 토론과 합의, 제도화를 위한 다양한 입법적 절차, 실천을 위한 차기 정부 구성 등 모든 과정에 시민들의 직접적 참여가 불가피합니다. 이미 지역 단위의 민회 구성, 선거법과 헌법 개정을 위한 시민의회 등 다양한 제안과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몇 달 안에 치를 것으로 예상되는 대선에서 민주개혁진영의 승리라는 시대적 요청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동일한 관점과 과정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유력 정치인 또는 일개 정파 수준에서 접근해서는 안됩니다. 시민참여라는 큰 흐름 속에서 민주개혁진영의 광범한 연대와 시대적 과제에 대한 결기를 모아 축제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민주당만의 경선은 필패를 가져올 것입니다. 재탕 방식의 후보 단일화도 이제는 식상한 만큼 국민들은 외면할 것입니다.

민주개혁진영이 대선 승리라는 축제를 맞이하고, 새로운 질서의 구축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제대로 실천하기 위한 방안으로 ‘개방적 국민경선’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대선주자로 적격하고 유력한 후보군 3~5명을 국민여론에 근거해 선출하자는 것입니다. 민주당 또는 국민의당이라는 협소한 한계를 넘어서서 완전한 국민참여경선제를 실시해 명실공히 민주개혁진영을 대표하는 대통령 후보자를 지명하자는 것입니다. 선두를 차지한 정치인을 대선주자로 선출하는 것뿐만 아니라 함께 참여한 유력한 정치인들이 차기 정부 내에서 주요한 책임총리와 장관직을 수행하도록 합의해내는 것입니다.

차기 정부가 실천해야 할 중차대한 시대적 과제는 겨우 20% 수준의 지지를 받는 개인과 정파로서는 도저히 감당해낼 수 없습니다. 예측하건대 과거 방식처럼 일개 정당이라는 한계에 갇힌 채 단일화를 통해 대통령이 되고, 좁은 인적 범위로 새로운 정부를 구성한다 한들 일 년 안에 반드시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봉착할 것입니다. 광범한 시민적 지지를 기반으로 유능한 개혁인사들이 연대하고 합의해 구성한 차기 정부의 출현만이 새로운 질서를 구축해낼 수 있습니다.

물은 낙차를 따라 흐르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듯이 정치는 민의를 따라 흘러야 합니다. 정법민의(政法民意)는 2017년 새해의 화두입니다.

이래경 | 다른백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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