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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류철균 교수가 수의를 입고 초라하게 끌려가는 모습이 뉴스를 장식하자 많은 사람들은 ‘사필귀정’을 머리에 떠올렸다 한다. 그러나 나는 ‘이(저)러려고 교수가 됐나 하는’ 모욕감과 자괴감을 느꼈다. 화면 속 그는 <영원한 제국>을 쓴 야심 찬 문학청년도, 시대착오적인 박정희주의자이거나 ‘능동적 부역자’도 아니었다. 소심하고 비굴한 ‘하수인’이나 화이트칼라 범죄의 피의자처럼 보였다. 그가 조교에게 죄를 떠넘기려 했다는 최악의 행태도 ‘우병우스러운’ 뻔뻔함보다는 비굴함의 발로로 보였다.

몇몇 이화여대 교수들이 총장(또는 그 배후)의 사주나 강요를 받아 정유라를 위해 저지른 것으로 알려진 비리는 황당하고도 몰상식한 범죄지만, 사실 그 디테일들은 오늘날 한국 대학의 평범한 민낯의 한 부분일 것이다. 어떻게 감히, 총장이나 학장이 교수들에게 집합을 걸어 특정 학생을 잘 봐주라 강요하거나, 교수 최후의 권한인 채점과 수업운영에 대해 간섭할 수 있는가? 대학마다 좀 차이가 있겠지만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라 본다. 경쟁과 성과주의에 찌든 신자유주의 대학에는 관료주의와 ‘독재’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의사결정의 반민주성 문제로 내홍을 겪는 대학들은 예외 없이 이 문제를 앓고 있다.

민주적·상향식 총장 선출방식이 무력화되자 국공립대 총장 선임에 청와대와 권력기관이 노골적으로 개입해왔으며, 이명박·박근혜 정권하의 사립대학에서는 ‘박근혜 스타일’이거나 부역자형 또는 기름장어형 인간이 대학운영을 맡는 일이 잦아졌다. 사립대 총장과 재단 중에는 교수·교직원을 자기 집 머슴쯤으로 생각하는 ‘갑’들도 있다 한다. 그런 자들이 권력을 마구 휘두르니 대학의 다른 존재들은 자연스레(?) 모두 ‘을’ 이하가 된다. 이를 제어하는 제도적·법적 장치가 없다는 게 한국 고등교육의 최대 비극 중 하나다.

'비선 실세' 최순실(61·구속기소)씨 딸 정유라(21)씨에게 학점 특혜를 준 혐의로 구속 영장이 발부된 류철균(필명 이인화)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가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검으로 소환돼 조사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학에는 마치 신분 같은 위계가 있다지만 이제 대부분의 정규직 교수도 ‘까라면 깐다’. 동국대 사태 등에서 보듯 정년을 보장받은 교수조차 막무가내로 해임하는 전횡도 가능하다. 조교수·부교수들도 고과와 성과의 압박 때문에 바짝 엎드려 살아간다. 그러니 비정규직 교수나 대학 내 다른 노동자들의 권익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유령의 것이 되었다. ‘헬조선’ 전체를 짓누르는 ‘노동의 분할’과 지배의 방법론이 대학 안에서도 예외가 없는 것이다. 정규직에게는 나은 연봉과 허위의식을 떡고물로 주는 대신 과잉된 불안과 개별화를 부여하고, 다수의 비정규직에게는 일자리 자체를 대가로 한 가혹한 착취와 억압으로써 복종하게 만든다.

촛불 덕분에 사회개혁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나라에 대한 꿈이 살아나고 있지만, 교육과 대학 개혁에 대한 목소리는 아직 잘 들리지 않는다. 입시와 학사관리 부정이 과연 이화여대뿐일까? 교원 인사는 어떨까? 오늘날 신자유주의 대학체제는 ‘헬조선’ 부패와 불평등의 전진 생산기지다. 전면 개혁이 필요하다. 대학 바깥에서는 대학의 경쟁력과 발전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며, 고등교육법과 사학법이 개정되어 교주와 재단의 대학 소유와 전횡을 제한해야 한다.

대학 내부의 당사자 운동도 절실하다. 그러나 누가 어떻게? 대학교수의 정년보장과 독립성은 원래 학문의 자유나 정치적 자유를 위한 것이지만, 권위주의와 성과주의 앞에서 거추장스러운 제도로 간주돼 파괴돼 가고 있다. 교수들의 책임도 크다. 정년보장과 독립성을 월급쟁이로서의 안위와 개인주의를 누리는 데 써왔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학에서는 교수들이 모임을 만들고 의견을 모아 표현하는 것 자체가 뭔가 이례적이고 위험한 일처럼 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교수회나 노조가 제대로 기능하는 대학이 몇 군데나 될까? 조장돼 있는 불안과 파편화를 넘는 연대와 세밀한 조직이 필요하다. 고령화된 민교협이나 정규직 중심의 교수노조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거나 혁신해서, 젊은 연구자들과 비정규직 교수들이 주축이 되고 연대할 수 있는 조직이 돼야 한다. 당사자들의 싸움이나 목소리가 없는 한, 문제 자체가 아예 가시화될 수 없는 파편화와 불통의 구조가 대학에 강고하다. 이에 도전을 시작할 때 조교나 대학의 다른 노동자들의 목소리도 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마침 이화여대에서 교직원·학생이 참여하는 총장 직선제를 부활하기로 결정했다는 반가운 뉴스가 들려온다. 그렇다. 제대로 된 교수회, 강사·조교·직원 노조, 대학원생·대학 총학생회의 구성만이 특권·부패의 ‘정유라 대학’을 공공적이고 민주적인 ‘우리 대학’으로 되살리는 길일 것이다.

천정환 | 성균관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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