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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이명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생활필수품 물가를 집중관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느닷없이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진 지 하루 만에 기획재정부는 배추·돼지고기·설탕 등 52개 관리대상 품목을 선정해 집중관리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른바 ‘MB물가지수’가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물가는 거꾸로 반응했다. ‘MB물가지수’에 편입된 52개 품목의 물가가 20%가량 폭등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배춧값이 급등하자 “내 식탁에는 양배추 김치를 올리라”고 했지만 고삐 풀린 물가를 잡지 못하고 시민들의 원성만 샀다. 당시 물가가 폭등세를 보인 것은 고환율 정책 탓이 크다. 대기업 수출을 늘리기 위해 고환율 정책을 펴는 바람에 수입물가와 소비자물가 급등을 불렀다. 대기업 살리겠다고 서민경제를 파탄낸 것이다.

최근 대외채무 급증으로 국가부도 위기에 처한 베네수엘라가 이명박 정부의 전철을 밟고 있다. 환율이 급등하자 물가통제정책을 도입한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은 700%에 달한다.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상인들은 물건 가격을 화폐 단위가 아닌 지폐의 무게로 계산하고, 여성들은 머리카락을 팔아 생필품을 구입할 정도다.

한국의 장바구니 물가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다락같이 오르고 있다. 채소·가공식품·음료 등 생필품 가격이 6개월 새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다. 무 가격은 1년 새 2.4배, 당근은 2.2배, 배추는 2배 올랐다. 콩나물 가격도 20% 넘게 올라 일부 식품업체는 생산을 중단했다.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로 달걀 소매가격은 1판(30개)에 1만원을 넘어섰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기차여행을 할 때 사이다와 함께 먹거나 어머니들이 아이들 도시락을 쌀 때 밥 위에 얹던 달걀은 부잣집의 상징이었다. 웬만한 집에서는 달걀 도시락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요즘 그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다. 달걀이 어느새 서민들이 선뜻 구입하기 어려운 ‘고가식품’이 된 것이다. 복고풍 정권이 달걀 도시락 추억을 상기시켜주긴 했지만 그래도 ‘미친 물가’로 인한 서민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게 우선이다. 정부는 인위적인 물가 통제가 아닌 물가 관리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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