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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가 안되면 생계 걱정, 잘되면 쫓겨날까봐 걱정이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자영업자의 모습이다. ‘2016 국세통계연보’를 보면 2015년 창업한 개인사업자는 107만8000명이고, 같은 해 폐업한 개인사업자는 74만9000명이다. 단순하게 계산하면 3분의 1만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자영업자들도 사정이 좋지는 않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자영업자의 51.8%는 연 매출액이 4600만원 이하이며 가처분소득 중 35.5%를 대출이자 및 원리금 상환에 쓰고 있다. 여기에 재료비, 인건비까지 합치면 실제 장사해서 남는 돈은 얼마 안된다.
장사가 잘되는 곳도 있다. 그런데 잘되어도 걱정이다. 쫓겨날까봐서다. 장사가 잘된다 치면 임대료가 100~200%까지 올라서 그걸 못 견디고 제 스스로 점포를 내놓거나, 아예 주인한테 쫓겨나는 일도 있다. 이처럼 장사가 잘되는데도 임대료 때문에 떠나게 되고, 사람이 떠난 동네는 독특한 매력을 잃는다. 찾아오는 사람이 줄면서 지역상권은 다시 침체된다. 이런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결국 건물주, 임차인 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다.
서울 성수동은 소규모 공장들과 노후한 주택들이 혼재되어 있는 준공업지역이었다. 이러한 성수동 골목에 2012년부터 예술가와 소셜벤처들이 모여들어 성수동만의 매력과 문화를 만들어 가면서 지역의 가치가 상승하고, 핫플레이스로 주목됨에 따라 소위 ‘뜨는 동네’가 되었다. 그러자 건물주가 임대차계약 기간을 1년으로 요구하는 등 임대료 상승 조짐이 보여 젠트리피케이션 문제 해결과 함께 예방책이 필요했다. 이에 성동구는 지속가능한 지역상권 조성을 위해 구 조례 제정, 주민협의체 구성, 건물주와 임차인, 지자체 간의 상생협약 체결을 추진했으며 공공임대점포인 장기안심상가를 조성 중이다.
이처럼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대책과 사회적 공론화는 먼저 지자체에서 시작했지만 현행법과 제도상 지자체 노력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이제 국회와 중앙정부가 나서 법과 제도로 힘을 실어줘야 한다. 필자는 지난 2월 국회의원, 자치단체장, 건물주, 맘상모, 소셜벤처 대표들과 함께 전국 47개 지방자치단체가 참여한 지방정부협의회 회장으로 국회 소관 상임위에 계류 중인 지역상생발전법 제정 및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을 촉구하기 위한 성명을 발표했다.
지역상생발전법 제정안은 젠트리피케이션 폐해 방지를 위해 홍익표 국회의원이 지난해 10월 대표 발의했다. 지역공동체의 공존과 상생의 협력적 이해관계를 증진시키고, 특화된 지역문화의 지속적인 발전을 도모하자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도 여러 국회의원이 대표 발의해 총 9건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2001년 제정돼 2015년에 개정됐지만 여전히 현실과 거리가 있다. 현행법은 임차인 보호기간 최대 5년, 서울시의 경우 환산보증금 4억원이 넘으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어 있다. 2014년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서울시내 상가 세입자들의 평균 영업기간은 1년7개월 정도다.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어 그만두거나, 환산보증금이 4억원을 넘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해 비워줘야 하기 때문이다.
건물주와 임차인이 상생발전하고, 소상공인들이 맘 편히 장사할 수 있도록 반드시 법이 마련되어야 한다. 법 제정이나 개정까지 많은 시간이 요구된다면, 현행법 시행령이라도 조속히 개정하여 환산보증금 한도액 초과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없도록 해야 한다. 약자를 위해 만들어진 법이 약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있으니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지금, 국회와 정부의 발빠른 결단이 필요한 때이다.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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