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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칼빈슨호의 행방

opinionX 2017. 4. 20. 11:04

전쟁에서는 허세도 중요한 전략이다. 적을 공포로 몰아넣고 아군의 사기는 북돋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일까. 전쟁판에서는 병력 부풀리기가 일반화돼 있다. 예컨대 삼국지연의를 보면 주요 전투의 동원 병력이 100만명을 넘기 일쑤다. 적벽대전에는 120만명이 투입됐다고 쓰여 있다. 하지만 당시 위와 촉, 오나라의 동원가능 병력은 모두 합해 87만명 정도였다. 소설가가 재미를 위해 숫자를 부풀렸겠지만 장수들의 허풍도 한몫했을 것이다.

허풍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나라가 북한이다. 김정일은 1990년대 초 미국에 대한 핵공격을 공언하곤 했다. 당시 북한은 조악한 형태의 핵폭탄 제조도 불가능했다. 북 외교관들이 플루토늄을 러시아로부터 밀수하다 적발되는 형편이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도 다르지 않다. 휴전선 지뢰 폭발 사건 때 대외적으로는 전쟁 불사 위협을 거듭했다. 하지만 정작 북한군에는 전면전 예방을 지시했다. 안팎으로 다른 말을 한 셈이다. 임진왜란 직전 조선 장수들은 선조 앞에서 일본이 까불면 단숨에 대마도를 점령하고 왜왕의 무릎을 꿇리겠다고 큰소리쳤다. 이처럼 허세는 양날의 칼이다.

미국 해군의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가 지난 15일(현지시간) 인도양을 지나고 있다. ㅣ미 해군

한반도로 향한다던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가 1주일이 지난 지금도 호주 해상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북한의 핵실험 도발 가능성이 점쳐진 김일성 생일(4월15일) 이전 한반도에 배치될 것이라는 당초 관측과는 큰 차이가 있다. 칼빈슨호의 한반도 전개 소식은 미국의 시리아 공격 직후에 나와 긴장을 고조시켰다. 미국의 ‘선제타격설’ ‘4월전쟁설’ 같은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그 와중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북한에 무적함대를 보내고 있다”고 말해 위기설을 부채질했다. 그러나 당시 칼빈슨호는 한반도에서 5000㎞가량 떨어진 인도양에서 다른 작전을 하고 있었다. ‘가짜뉴스’다.  

이것이 미국의 허세인지, 아니면 북한 압박용 심리전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한민족의 생존이 걸린 북핵 문제를 가볍게 보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한반도는 사소한 불씨 하나도 전면전으로 이어질 우려가 상존한다. 항공모함 배치 같은 중요한 군사 조치는 계획적이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허풍은 포커판에서나 필요하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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