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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은 출신 대학이고, 좋은 대학을 나와야 밝은 미래가 보장된다는 믿음은 확고하다. 대학 서열이 공고한 상황에서 입시생들은 쓸모없이 복잡한 수능 문제를 풀기 위해 온 힘을 소진한다. 학생부종합전형도 기획된 자기소개서대로 맞춤형 생활을 강요하는 금수저 전형이 돼 버렸다. 한편 대학 시절에는 소진한 에너지를 충전하고 취직 공부에 전념하면서 정작 전문성을 위해 필요한 대학 공부는 소홀히 한다. 우리 교육제도는 치열한 경쟁구도에서 자녀를 키우도록 강요하지만 노력에 비해 제대로 된 전문성 있는 인재를 육성할 수 없다.

과도한 입시경쟁의 완화를 위해선 대학 서열화를 약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학생들의 학업 능력 차이가 너무 큰 교육 여건을 만들어서는 안된다. 비슷한 학업 능력을 가진 학생들이 함께 공부해야 효율적인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만족하는 입시제도로 ‘성적순 추첨 방식’을 제안한다.

실력대로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는 원칙을 깨는 역발상적인 제도라야 대학 서열화를 희석시킬 수 있다. 수험생이 ‘다수 대학을 지원하되’, 진학할 대학은 ‘성적순 추첨 방식’으로 결정하는 제도를 생각해보자. 즉 전국 1등이 추첨의 1순위이고 꼴찌가 마지막 순번이 된다. 모든 수험생이 5개의 대학을 지원한다고 가정하자(물론 5개 대학마다 지원하는 학과는 다를 수 있다). 추첨의 1순위인 전국 1등은 지원한 5개의 대학 중 무작위 추첨으로 선정된 대학에 입학한다. 이와 같이 추첨 순번에 따라 수험생이 입학할 대학이 결정된다면 결국 정원이 모두 채워져 추첨에서 배제되는 대학이 나올 수밖에 없다. 낮은 성적 때문에 추첨 순위가 뒤로 밀린 수험생은 추첨에서 배제된 대학에 지원하더라도 입학할 수 없다. 그러나 우수한 성적은 아니지만 지원한 5개 대학에 꼴찌로라도 입학할 성적이 된다면, 그 수험생은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 다만, 추첨으로 선정하기 때문에 5개 대학 중 어느 대학에 입학할지는 입시 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다.

‘성적순 추첨 방식’의 입시제도에서는 수험생이 지원할 대학의 수를 늘릴수록 입시경쟁이 완화되겠지만, 일정 수준의 학업 능력을 갖추지 못한 학생이 상위 대학에 입학할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대학에서 경쟁은 치열해질 것이다. 추첨으로 일류 대학에 입학한 학생의 실력을 최상위권의 실력으로 사회가 인정해 주지 않을 것이므로 어느 대학에 진학하든 학생은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 할 것이다.

경쟁의 축이 대학입시에서 대학으로 이동한다면 우리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청소년 삶의 질이 개선되고 정상적인 교육이 가능해질 것이다. 입시 위주의 교육 부담이 줄어들면 고교 교육은 대학 교육을 준비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출 수 있어 고교 교육의 정상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대학 서열화가 완화된다면 입시를 위해 사교육비를 과도하게 쓸 이유도 줄어들 것이고, 교육의 불평등 문제도 감소할 것이다. 셋째, 대학 교육의 질이 향상될 수 있다. 대학 서열이 굳어진 상황에서 대학 간의 경쟁은 큰 의미가 없다. 그러나 학력 수준이 비슷한 신입생을 받는다면 대학은 우수한 졸업생을 배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경쟁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학생 스스로가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기 위해 대학에서 학업에 열의를 보일 것이다. 경쟁의 축을 대학으로 옮기면 우리나라의 인적 역량이 높아지는 긍정적인 효과를 얻게 될 것이다.

‘성적순 추첨 방식’은 수험생의 대학 최종 선택 권리를 제한한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수험생에게 대학 선택의 폭까지 스스로 결정하도록 한다면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만약, 수험생이 단 한 대학만을 원한다면 그 대학만 지원하게 하면 된다.

현행 입시 위주 교육의 부작용은 너무 크다. 무엇보다 경쟁은 발전의 원동력이 되어야 아름다운 법이다. 현재의 입시 경쟁은 대학 서열화를 재생산하는 소모적인 것이다.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소모적인 경쟁의 틀 속에 우리 청소년을 가두어서는 안된다.

<김근수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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