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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대학생이던 사촌오빠들이 겨울에 나섰던 아르바이트는 군고구마 장사와 졸업식 꽃장사였다. 그 시절 군고구마를 팔던 청년이 이제 중년을 넘어선 나이다. 이들이 따끈한 군고구마를 사들고 퇴근하는 겨울 풍경화를 그려보면 자못 서정적이긴 하지만 상상화에 가깝다. 2000년대 초반 고구마를 집에서 구워 먹을 수 있는 직화냄비가 등장했다. 홈쇼핑에서는 고구마를 사면 군고구마용 직화냄비를 서비스로 줄 정도로 흔했다. 집집마다 고구마를 직접 구워 먹기 시작했고, 나도 마찬가지다. 우리 아이들은 군고구마를 엄마가 구워주는 ‘가정 요리’로 여길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군고구마를 팔아 보려는 사람들이 있는지 군고구마통이 팔리고 있다. 군고구마통의 유형은 ‘장작형’ ‘가스형’ ‘원적외선형’으로 나뉜다. 장작으로 불을 때서 굽는 장작형은 20만원 선이지만 번거롭다. 가스형은 가스비가 만만찮고, 전기를 꽂아 원적외선으로 굽는 군고구마 기계 값은 150만원도 넘어 처음부터 ‘창업비용’이 높은 편이다.

군고구마만 팔려는 사람도 많아 보이진 않는다. 운영 중인 가게에 ‘숍인숍’으로 들여놓고 한철 팔아보려는 요량이다. 카페에 호객용으로 들여놓기도 하고, 손님이 뜸한 겨울철 채소가게 한쪽에 들여놓고 소액이라도 벌려는 용도 정도다. 그런데 하나같이 큰 재미는 못 보는 모양이다. 중고시장에 ‘군고구마통 팝니다’라는 글이 제법 눈에 띄는 걸 보면 말이다. 하긴 겨울 한철 편의점마저도 군고구마를 팔고 있으니 단일 메뉴로는 경쟁력이 전혀 없다. 

근래 군고구마 직화냄비를 뛰어넘는 열풍의 주인공은 ‘에어프라이어’다. 튀김은 먹고 싶지만 기름은 부담스러운 마음을 파고들어 집집마다 필수 가전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4대 홈쇼핑에서는 연일 에어프라이어를 판매상품으로 내놓는다. 이미 팔릴 만큼 팔렸지 싶은데도 커진 용량, 새로운 기능과 디자인으로 ‘재구매’를 권유하는 중이다. 유수의 가전회사마다 업그레이드된 에어프라이어를 출시하고 있고 당분간은 성장 시장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에어프라이어 열풍이 불다보니 재빠르게 식품기업들도 에어프라이어 전용 냉동식품을 앞다투어 출시 중이다. 어쩌다 에어프라이어를 한 대 들여놓은 나도 쏠쏠하게 써먹고 있다. 전날 먹다 남긴 치킨을 데우거나 콩을 튀기는 데 요긴해서 일단 전기료는 다음 달에 생각하기로 하고 연신 돌려대는 중이다. 급기야 재미가 들려 잘 사지도 않던 냉동감자와 냉동만두, 치킨너깃 같은 냉동식품들도 덥석 집어 들고 오는 바람에 지금 냉동실이 터져나갈 지경이다. 평소엔 식용유가 너무 많이 들어 식구들 다 모이면 큰맘 먹고 튀겨먹던 것들도 기름을 덜 ‘바른다는’ 이유로 더 튀겨 먹게 되는 묘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쇼호스트들은 에어프라이어를 팔면서 “집에서 직접 해서 드시라”는 ‘집밥 전도사’ 같은 말로 유혹을 한다. 재료를 사다가(막상 신선 재료는 고구마나 삼겹살 정도다), 직접 해먹으면 외식비가 줄어들어 가정경제에 도움이 될 것처럼 말한다. 마트 영수증을 보며 갸우뚱거리고는 있지만.

이제 에어프라이어와 가정 간편식 시대가 열렸는데, 입에 풀칠이라도 하겠다며 호구지책으로 음식 장사에 나선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쫓기며 장사를 하는 길거리 장작구이 통닭과 삼겹살을 굽는 저이의 운명이 군고구마 장수의 운명 같아 보인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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