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지난여름, 학교를 그만둔 초등 저학년 연령대 어린이들을 취재하며 알게 된 그들의 상황에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학교를 그만두면 왜 모든 배움과 돌봄은 오롯이 부모의 몫으로 돌아가는가. 아이는 왜 고립되어 친구를 그리워하고, 세상 사람들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가. 학교를 그만두는 일이 낙오와 도태로 인식되는 사회에서 기죽지 않고 당당하기란 부모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학교 말고도 어린이들이 갈 수 있는 장소나 프로그램을 연결하려고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쉽지 않았다. 그들을 위해 장소를 제공하고 싶다는 곳은 몇 군데 있었지만 그보다 필요한 일은 일단, 각자 흩어져 힘들어하고 있는 학교 밖 어린이 가정을 한데 모으는 일이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구나 싶어 급작스레 만남을 제안했다. 숲속공원에서 한적한 평일에 만나자고. 서울, 경기, 강원에서까지, 온라인에 공지한 지 일주일 만에 아홉 가정이 모였다.
아이들이 어울려 노는 사이 부모들은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이 학교 밖의 길을 택한 이유는 무척 다양했다. 몸이 아파서 학교에 가지 못한 경우도 있었고, 공교육에 문제의식이 있어 입학을 하지 않은 가정도 있었다. 교사와의 관계, 혹은 또래와의 관계 때문에 학교를 잠시 쉬고 있는 가정, 학교에 다니고 있는 상태로 모임에 참석한 가정도 있었다. 대안이 없어 당장 그만두지는 못하지만 아이의 개성과 자유로움을 보장해주고 싶어 차츰 학교 밖의 길을 준비해보고자 했다.
세상은 이들을 주류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것’으로 치부하지만, 사실 이들은 ‘적응하지 않은 것’이다. 문제가 있지만 ‘남들도 다 그러니까’ 눈감고 그냥 사는 게 아니라 익숙하고 당연한 것에 질문을 던지고, 그 물음에 답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이들이 아니라, 사회화라는 이름으로 질문을 거세하고 한 인간의 고유함을 획일화하는 학교 시스템일 것이다.
그날, ‘친구와 뛰어노는’ 평범한 일에 목이 말랐던 아이들은 거침이 없었다. 처음 만나 친해지려면 놀이 프로그램이라도 마련해야 하나, 남자아이들이 훨씬 많은데 여자아이들이 못 어울리면 어쩌나, 지레 했던 걱정들이 무색했다. 숲속을 뛰어다니고, 모래밭을 뒹굴며 서로의 몸을 파묻는 일에는 이름도, 나이도, 성별도 필요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친구들과 얘기 좀 나눠보았냐는 엄마의 말에 한 아이가 이렇게 답했다 한다. “우린 노는 게 대화야.”
매달 만남을 이어가기로 결정하고 나자, 모임의 방향에 대해 부모들은 보태고 싶은 말이 많았다. 혼자 하던 고민을 함께 헤쳐 나갈 것에 대해 기대도 크고, 아이들에게 필요하다 생각하는 배움의 종류와 형태에 대해서도 의견이 달랐다. 그러나 선뜻 이 모임에 어른들의 말을 얹지는 않기로 했다. 오직 아이들 중심으로 만남을 이어가자고 뜻을 모은 가운데, 아이들은 벌써 언제 다시 만나느냐고 엉덩이를 들썩이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부모들이 일일이 함께 다니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아이들의 성장에는 어른들은 개입할 수 없는 그들만의 세계가 있게 마련이며, 학교를 그만둔 모든 어린이들의 부모가 아이와 함께 다닐 수 있는 형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풀어가야 할 숙제는 많지만, 일단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들을 만난 것에 기뻐하며 호기롭게 학교 밖 어린이들의 네트워크는 첫걸음을 뗐다.
<장희숙 | 교육지 ‘민들레’ 편집장>
'주제별 > 교육'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진경의 교육으로 세상읽기]자격증의 자격을 물어야 한다 (0) | 2018.10.08 |
---|---|
[기고]교육개혁의 방향 (0) | 2018.10.05 |
[정동칼럼]‘대학 적폐’의 핵심, 대학평가 (0) | 2018.09.19 |
[NGO 발언대]진짜 ‘반값 등록금’을 위하여 (0) | 2018.09.10 |
[기고]수능 기초과목별 평가방법 이렇게 달라도 되나 (0) | 2018.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