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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적겠다. 2945만4432원. 필자의 대학 생활 영수증의 총액이다. 세부 내용을 공개하면 이렇다. 8학기 중 학자금 대출을 받은 6학기의 등록금과 생활비 대출 총액은 2953만9000원으로, 국가장학금으로 받은 150만9071원을 제하고 나면 2802만9929원의 원금이 남는다. 여기에 142만4503원의 이자를 더하면 3000만원에서 54만5568원 모자란 2945만4432원이다. 또 하나, 든든학자금은 상환기준소득(2018년 기준 2013만원)을 넘지 않는다면 원금 상환 의무는 없어도 이자가 계속 쌓인다. 그러니 내게도 3000만원이라는 고지가 머지않았다.

등록금 자체가 워낙 많기 때문에 한 번 대출을 받으면 원금을 채 갚기 전에 다음 학기에 대출을 받는 악순환이다. 300만원을 웃도는 단위로 쌓이는 원금에 아무리 낮은 금리가 붙는다 해도 20살에 첫 대출을 받아 첫 직장을 가질 때까지의 긴 시간이 지나면 액수는 모른 체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난다. 시간은 금이라고 했던가. 시간이 지날수록 돈이 돈을 불리는 꼴을 보고나니 그 의미를 알게 됐다.

많은 등록금은 ‘결국 네가 선택한 일이잖아’란 수익자 부담 논리로 유지된다. ‘그렇게 등록금이 부담되면 왜 무리해서 대학에 갔냐’는 후렴은 ‘요즘 시대에 대학 졸업장이 뭐가 중요하냐’는 2절로 이어진다. 다시 보자. 지난 6월17일 검찰 발표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이른바 ‘S·K·Y 대학’ 출신을 채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점수를 조작했다. 대학 졸업장과 서열에 따라 채용 여부를 결정한 셈이다. 더불어 비진학 청년에 대한 편협한 인식, 부실한 사회안전망으로 대학 진학 여부가 자유 선택이 아닌 사회적 억압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는 것이 맞다.

대학의 재정 역시 오랜 기간 수익자 부담 원칙으로 운용돼 왔다. 한 학기 수입을 정부 재원이 아닌 민간 재원에 의지하고 있다보니 고등교육비 부담은 공공보다 개인의 몫으로 여겨진다. 예를 들어 부실 대학 명단에 오르면 운영을 제대로 하지 못한 사학재단이 아니라 학생이 학자금 대출을 이용하지 못함으로써 책임을 진다. 대학 공공성에 대한 고민 없이 민간에게 책임을 떠넘기다보면 교육격차에 의해 사회 양극화가 심해질 뿐이다. 이제는 콩 심은 데 콩 나지 개천에서 용이 나지는 않는다.

올해 교육부는 고등교육 예산을 지난해 9조4987억원에서 4550억원 증가한 9조9537억원으로 편성했다. 실효성에는 의문이 들지만 등록금에 대한 부담을 호소할 때마다 정부도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곤 했다. 처음엔 학자금대출제도의 도입이었고, 다음은 든든학자금제도의 신설이었다. 취업난과 저임금에 맞물려 연체율이 늘자 최근에는 국가장학금 확대와 지자체의 학자금 대출 이자 지원사업으로까지 확대되었다. 그렇지만 이는 등록금을 낮추는 근본적 대안이 아니라 당장에 필요한 보조 수단일 뿐이다.

대학 공공 기숙사 확충도, 학교 앞 임차인으로서의 주거권 보장도, 단시간 일자리 질의 향상도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가 고등교육비마저 개혁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 것은 ‘폭탄 돌리기’에서조차 만지기 싫다며 나 몰라라 하는 꼴이지 않나. 내일을 버리고 오늘만 살게 하는 대출형 정책은 버릴 때가 되었다. 이제는 진짜 반값등록금을 향한 전반적 기조 수정을 바탕으로 대학 공공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대학 재정 확보에 대한 논의가 절실히 필요한 때다.

<민선영 | 청년참여연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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