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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사성어에 남상(濫觴)이라는 말이 있다. 공자가 제자 자로에게 “장강은 큰 강이지만 그 근원은 ‘겨우 술잔에 넘칠 정도(濫觴)’로 적은 골짜기 물이다. 그런데 그것이 하류로 내려오면서 양도 많아지고 흐름도 빨라져 배를 타지 않고는 건널 수가 없게 되었는데 이는 작은 물이 모여 물의 양이 많아졌기 때문이니라”고 일렀다. 모든 일은 근본이 있고, 큰일도 사소하고 작은 것에서 출발함을 일깨운다. 첫 시작이 나쁘면 좀처럼 바로잡기 어렵고, 시간이 가면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진다. 잘못된 일처리가 관행이 되고 적폐로 굳어졌을 때 쉽사리 끊어내기 어렵다는 것을 요즘 우리는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지 않는가?

그런 점에서 최근 정부합동 부패예방감시단이 ‘귀농어귀촌법’ 시행 이후 처음 실시한 귀농·귀촌 지원사업 실태점검은 오류를 수정할 단서를 잡았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점검이었다고 생각한다. 합동점검에서 성과들만 가득했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한 모양이다.

도시민이 선호하는 대표적 귀농지역 8개 시·군을 우선 점검했는데 총 505건(총 171억원)의 위반사항이 적발되었다고 한다. 그중에는 농지 등 영농기반을 마련하라고 지원한 보조금으로 별장 같은 집을 지은 사례도 있었다. 사안의 경중에 따라 지원금 회수, 관련 공무원 징계 등의 조치를 취할 예정이고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점검을 확대할 모양새다. 규정과 지침을 위반한 것이니 당연한 조치일 것이다. 잘못된 것은 분명하게 바로잡아야 한다.

하지만 이번 점검과 사후 조치가 행여 문재인 정부가 100대 국정과제로 삼아 추진하는 ‘사람이 돌아오는 농산어촌’에 영향을 줄까 염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잘못을 바로잡는 것과 아예 정책을 뒤흔드는 것은 처방이 전혀 다른 것인데, 뿔을 바로잡자고 소를 잡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봐왔다.

정부의 귀농·귀촌 정책은 귀농·귀촌이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되어 2016년 한 해에만 49만6000여명이 농촌에 정착하고 있는 현실에 기반을 둔다. 이런 행렬은 앞으로 상당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데 마을 전봇대 숫자보다 주민 숫자가 적어진 농촌지역엔 가뭄의 단비 같은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농촌으로 향하는 도시민에게 필요한 것을 지원하는 것이 귀농·귀촌 정책인데, 그중 가장 큰 부분이 자금이다. 이번에 적발된 주요 위반사항도 자금지원과 관련이 많다. 귀농·귀촌 융자자금의 대출 부실심사, 목적 외 유용, 부당집행 등이 대다수다.

행정 담당자의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제대로 정책대상자를 가려내려면 자산이나 교육이력, 주소지 변동사항 등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하는데 일선 담당자에게 그럴 권한은 없다.

또한, 귀농·귀촌인들이 농촌 정서를 이해 못하고 도시생활의 규범과 정서를 우선 고집하기 때문에 관련 민원이 많아 공무원 사이에서는 귀농·귀촌 업무가 기피 1순위라고도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귀농·귀촌 정책 지원과정에 오류가 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하지만 행여나 귀농·귀촌 정책이 잘못된 관행이 만연한 적폐로 오해받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고, 애쓰는 일선 공무원에게 일벌백계보다는 애정 어린 지도가 우선 되었으면 한다.

<채상헌 | 연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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