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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 촛불이 다시 등장했다. 청년의 노동을 사유화하고 꿈과 삶을 착취해 그들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이 땅의 어른들에 대한 항의의 촛불이다. 현장실습이라는 미명하에 적정 임금과 합당한 처우는커녕, 안전과 생명마저 보장받지 못하는 ‘값싼 노동자’ 취급을 받다 목숨을 잃은 이민호군의 친구들이 들고 나온 촛불이다. 구의역의 김군과 LG유플러스 고객센터의 홍양이 생을 마감했을 때만 해도 슬픔을 앞세워 어금니를 악물고 참았던 분노가 기어코 터져 나온 것이다.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온 이민호군의 친구들은 “현장실습 곳곳이 세월호이고 구의역입니다”라고 절규한다. 이 땅에서 세월호와 구의역은 어른들의 무능과 비겁함과 탐욕이 실재하는 장소이다. 현실과 관행과 편의를 내세워 자신만의 이익을 좇는 어른들의 못남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곳이다. 되새길수록 울화가 치밀어 썩 내키지 않지만, 이민호군의 친구들이 세월호와 구의역의 기억을 불러내 상기시키고자 한 어른들의 못남이 무엇인지 그 면면을 짚어 보자. 이를 통해 무엇이 미래를 담지할 어린 학생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첫 번째, ‘위험의 전가’이다. 어른들은 자신들이 감수하거나 해소해야 할 위험 노동을 스무 살도 채 안된 고교생이 도맡게 했다. 그런데도 작업현장에는 안전장치도 없었고 위험을 인지시키고 예방하기 위한 관리와 감독도 없었다. 그런데도 어린 학생을 그 위험한 작업현장으로 끌어냈다. 고장난 기계를 수리하다 다쳐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도 이군을 불러내 일을 시켰다.
두 번째, ‘책임의 전가’이다. 고장난 기계의 작동장치를 끄고 수리를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며, 사고 원인을 이민호군에게 돌리려 했다. 더 나아가 기업은 회사의 어려운 현실에, 학교는 취업실적을 강제하는 정부당국에, 정부당국은 허술한 법·제도와 인력 부족에 책임을 돌렸다. 어느 누구도 나쁜 규칙을 바꾸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기에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비용의 전가’이다. 어린 학생들에게 저임금-장시간 노동의 부담을 부과했다. 이민호군은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실습수당을 받으며 월 80시간의 초과노동을 했다. 구의역의 김군이, LG유플러스 고객센터의 홍양이 그러했듯이 이민호군은 어린 학생이 아니라, 그저 다루기 쉬운 노동자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아니, ‘노동자 이하’였다. 현대 자본주의-민주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그리 취급받아선 안된다. 인간과 시민임을 전제로 대우받아야 한다. 그래서 노동자 홀로 위험과 책임과 비용을 전담해서는 안된다. 그리해서는 인간적 삶과 시민적 활동이 불가능하다.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규칙을 충실히 따르는 것은 과오가 아니라 ‘범죄’이다. 그러니까 구의역의 김군을, LG유플러스 고객센터의 홍양을 그리고 이민호군을 죽게 한 이 땅의 어른들, 특히 기업인과 교육자와 정부당국자란 이름의 어른은 범죄자다. 최소한 방조자이다. 이 글을 쓰는 필자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해 5월 구의역의 김군 어머니가 이리 경고한 바 있다. “아이 탓이라고만 하고 이러면 안되잖아요. 앞으로 또 다른 사람 분명히 죽어요. 이건 진짜 아니에요”라고. 그 경고가 1년 반에 걸쳐 두 번이나 현실로 나타났다. 이 땅에 ‘범죄도시’는 따로 있지 않다. 위험과 책임과 비용을 어린 학생들에게 전가하는 어른들이 건재한 현실이 바로 범죄도시이다.
이곳에서는 죽음에 이르지 않았어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당한 고통’의 사례가 숱하게 발생하고 있다. 교육부의 공식집계만 해도 2016년에만 6만여명의 고교생이 3만여개 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했는데, 그중 95개 업체에서 법정시간을 초과해 실습을 시켰고 27개 업체는 임금도 지급하지 않았다. 또 부당대우(45건)와 유해·위험업무(43건), 성희롱(17건)도 다수 일어났다.
필자에게도 특성화고에 다니는 이민호군과 동갑내기인 아들이 있다. 다행히 모진 일을 겪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삶을 즐겁게 꾸려가고 있다. 그래도 보고 있노라면 이민호군과 그의 친구들이 떠오르며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도 애써 한마디 한다. “내 아들과 민호의 친구들이여, 나를 포함한 어른들을 믿지 마라. 오직 촛불을 들고 나온 그대들의 의지와 마음을 믿어라. 이 땅과 이 세상은 결코 어른들의 것이 아니다. 그대들의 처지와 생각에 맞춰 이 땅과 이 세상을 새로이 만들어 가라.” 자기부정, 못난 어른이 그나마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다. “부러지지 않고 죽어 있는 날렵한 가지는 추악하다.” 이제 어른들은 사라질 때이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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