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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의, 80년대 학번이며 1960년대에 태어난 이들을 지칭하는 ‘386세대’라는 말이 처음 쓰여지던 때를 회고하면, 그 말은 상당한 자긍심과 패기가 포함된 말이었다. 기존 ‘4·19세대’나 ‘6·3세대’와 달리 이들의 이름은 특정 사건과 얽혀있지 않았고, 그런 의미에서 과거가 아닌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이름이었다. 세대를 지칭하는 이름에 유례없이 학번이 들어있었던 것은 이들의 정신적 젖줄이 생물학적 어버이가 아닌 대학이었기 때문이며, 따라서 이전 세대와 결정적 단절을 했다는 선민의식에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이름은 우연찮게도 당시 최신 컴퓨터 기종의 명칭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요컨대 한국 민주화의 주축을 담당했던 경험과 전망을 지닌 그들 앞에 드넓게 펼쳐진 가능성은 매우 밝아 보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의 상당수가 1990년대 중반 이래 ‘젊은 피’로 불리며 정치권의 여야에 ‘수혈’되었고, 특히 노무현 정부의 주축을 담당했던 것 또한 우연이 아니다. 이들을 애초에 불러냈었던 민주화의 호명만큼이나 민주화 이후 제도와 문화를 건설하는 급박한 임무를 맡을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잘 알려진 것처럼 이들은 그 임무에 장렬하게 실패하였다.

이제는 아무도 ‘386’이라는 말을 감히 쓰지 않는다. 이들은 중년이 되어 대부분 ‘586’이라고 불릴 나이에 도달했으며 누구보다도 빠르게 ‘기성세대’로 편입되었다. 30년 전 민주화운동의 일익을 담당했을지는 모르지만 그 이후 민주주의를 공고화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고, 자신들이 물려받은 것보다 더 나은 공동체를 가꾸어내지 못했다. 이들이 스스로를 ‘386’이라고 부르지 않게 된 이유는 그것이 기득권의 다른 이름이 되었기 때문이며, 사라지고 실패한 전망의 희미하고 아픈 그림자를 되새기게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아마도 이들보다 비극적으로 이름을 잃은 세대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이곳에서 새삼 ‘386세대’를 되새기는 이유는 싫건 좋건, 알게 모르게 이들이 정치의 중심으로 다시 소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에게 두 번째 정치적 기회가 다시 주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이들이 십수년 전의 실패를 다시 반복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과거의 실패를 상기하고 새로운 정치환경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첫째, ‘386세대’가 정치의 중심으로 들어와 있다는 사실은 노무현 정부 이래 정치의 중심으로 소환되었던 이들이 정확하게 10년이 지난 지금, 정확하게 그 자리에 다시 불려 나오고 있다는 사실로 확인된다. 더 이상 스스로를 ‘386’이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그만큼의 나이와 경험과 자신감을 보탠 채 책임있는 역할을 맡고 있고,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소환에는 물론 역설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역할이 매우 크다. 박근혜 정부의 구심을 이루었던 소위 ‘신386’(30년대생, 80대가 되어가며 60년대에 활동했던)이 유신시대의 인사들이었다면 이들에 비해 현 행정부와 청와대는 훨씬 젊고 활기차고 새로워 보이기만 하며, 노무현 정부와 386세대의 몰락이 얼른 연상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불과 10여년 전, 노무현 정부와 386세대의 실패는 매우 구조적인 것이었다. 청와대는 여당과 국회를 주변화시켰고, 관료제에 포획되었으며,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하였다. 이들은 후속세대의 양성이나 충원에 관심이 없었으며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10여년 전의 그 자리로 돌아갈 이들이 결국 자신들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386세대의 근본적인 비극은 자신들이 위치한 한국사의 독보적 자리만큼이나 스스로를 체계적으로 고립시킨 데 있었다. 나는 문재인 정부의 386세대가 그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길 빈다.

둘째, 유권자로서의 386세대가 다시 정치의 중심부로 돌아온 것 또한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 수십년 동안 상당한 정도로 ‘보수화’의 길을 걷던 이들의 지지 없이는 탄핵이나 정권교체도 불가능했을 것이고, 현재의 높은 대통령 국정지지도 불가능할 것이다. 아마 짐작하건대 이들의 상당수는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고, 박근혜 정부의 유신회귀에 분노했으며 지난겨울 광화문에 촛불을 들고 나왔던 사람들일 것이다. 이제 대부분이 50대가 된 이들은 각종 정치·사회적 이슈에서 현재의 60대나 예전의 50대에 비해 현저하게 진보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IBM 386컴퓨터가 박물관으로 들어간 지도 한참이 지난, 그리고 그 일부분이 ‘686’이 되는 시간을 눈앞에 둔 2017년에 여전히 386세대의 어깨에 지워진 짐이, 그리고 그들을 생산적으로 극복해야만 할 한국정치의 과제가 버겁기만 하다.

<박원호 |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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