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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국회를 보며 2016년 겨울이 다시 떠올랐다. 당시 시민들은 가능한 모든 합법적인 행위만을 동원해 기어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냈다. 시민들은 거리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시위자를 단호하게 배척했고, 비폭력을 지향하는 꽃 그림 그려진 스티커를 경찰 차벽에 붙였다가 그마저도 떼어낼 만큼 섬세함을 보여줬다. 주말 집회는 대중교통 운행이 끝나기 전에 마무리되었고 주중에는 시위가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췄다. 비폭력과 일상의 유지는 오히려 더 극적인 긴장을 조성했다. 

분노가 모자라 그런 게 아니었다. 사람들은 지독하게 지기 싫어했다. 이번에는 모든 것을 끝장낼 기세였다. 폭력과 무질서는 답이 아니었다. 그런다고 청와대를 너무 사랑하는 당시 대통령이 제 발로 걸어 나올 것 같지 않았고 시위가 폭동이 되면 세력이 축소되고 고립될 게 뻔했다. 사람들은 인원수와 결연함으로 국회를 압박하는 데 집중했다. 6차 집회에선 전국적으로 230만명 이상이 모여 입법부를 극도로 몰아붙였다.  

시민들이 선택한 길은 탄핵안이 상정되고 표결을 거쳐 통과되고 다시 헌재로 넘어가 인용되어야 목적지에 도달하는 멀고 험한 여정이었다. 하지만 시민들은 참고 기다렸다. 법적 기반 위에서 일이 처리되는 것은 시민들이 선택한 방법이기도 했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기도 했다. 그것은 시민들이 ‘버려야 할 세력’과 자신을 구분하는 핵심 차별점이었다. 

적폐 시대는 적폐세력이 더 이상 자신이 지키라는 원칙과 법을 스스로는 지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종말로 치달았다. 그들은 법을 지키라 하곤 생사람을 잡아 간첩을 만들었다. 국가가 나서 시민들을 불법 사찰하고, 국고에 손을 대 착복한 이가 적지 않았지만 처벌을 받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들은 자유를 수호하라 하곤 국정교과서를 만들어 자유를 구속했다. 선량한 시민을 보호하라 하곤 생명이 위태로운 학생들을 외면했다. 약자의 작은 불법엔 무자비했지만 자기편의 잘못은 덮기 일쑤였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이상민 위원장이 29일 밤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실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안 등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처리를 위한 사개특위 회의를 개의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이 위원장 앞으로 몰려가 항의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2016년은 보수 정권이 자유민주주의와 함께할 수 없는 집단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시민은 적폐세력과는 다르게 스스로 법과 원칙을 지키는 과정을 통해 적폐를 몰아내려 했다. 시위에서 비폭력을 종용하는 확고한 태도는 그간 집권세력의 이율배반적인 태도에 신물이 난 시민들이 폭넓은 공감대 속에서 보여주는 명확한 선언이었다. 

1년이 지나 MBC도 적폐를 몰아내고 있었다. 이전에 파업에서 연패하고 있을 때 나는 종종 어떤 역사적인 순간이 오면 로비에 모여 만세라도 부르는 장면을 상상해보곤 했다. 하지만 2017년 가을의 로비는 차분했다. 사장실에 들어가 사장을 의자째 들어다 내던지고 싶은 심정은 굴뚝같았지만 직원들은 적법한 절차를 거치고 기다리며 적폐를 하나씩 몰아냈다. 그 방식은 노조원들이 촛불의 일원으로 움직이며 또다시 철칙으로 되새긴 시대정신이었다. 

정권이 바뀌어도 여전히 국회에선 자유한국당이 다수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때문에 개혁이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시민들은 법의 틀 안에서 움직이라고 주문하며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국민들은 집권세력이 할 수 있는 것을 잘하는지 주목하고 있고 보수세력이 다시 자유민주주의 테이블에 같이 앉을 사람이 될지 주목하고 있다.

국회 활극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여야 4당의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자유한국당이 필사적으로 저지를 하기 위해 온몸을 던지고 있다. ‘빠루’도 등장했다. 이 촌극을 만들고 있는 한국당을 보며 느낀 감정은 안타까움이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했다는 죄목으로 실격당했는데 다른 당이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했다며 다시 스스로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동에 나서고 있다. 국회선진화법을 스스로 만들어 놓고 스스로 무력화시키는 모습을 통해 지난 시절의 짙은 향기를 다시금 느끼게 한다. 

촛불혁명은 당시 집권세력이 법과 원칙 밖에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었고, 이번 국회 폭력 사건은 보수 정치가 여전히 체제의 한계선 밖에 있다는 것을 자인하는 과정이다. 정부의 실수가 쌓이면 야당의 지지는 오르기 마련이지만 그들이 재기를 원한다면 ‘있는 법이라도 제대로 지키라’며 탄핵에 찬성한 8할의 시민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김신완 MBC PD·<아빠가 되는 시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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