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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은 주말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대규모 장외집회를 갖고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결사 저지를 다짐했다. 당 지도부와 의원 등 참석자들은 두 손에 ‘독재타도, 헌법수호’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단상에 오른 의원들은 “김일성 치하” “수령 국가” 등 색깔론을 다시 꺼내 들었고, 행진 대열을 따르는 참가자들은 “문재인 빨갱이” “개XX” 등 욕설을 내뱉었다. 한국당은 이날 집회를 위해 전국 253개 당협에 당원 총동원령을 내렸다.

한국당은 전날까지 연이틀간 국회에서 감금과 육탄전, 드러눕기, 집기 파손 등 온갖 폭력적 수단으로 법안 접수를 막고 회의장을 봉쇄했다. 민주적인 법안 처리 절차를 폭력으로 짓밟고,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고 난 다음날엔 장외에서 태연히 헌법을 지키겠다고 외치니 참으로 뻔뻔하기 그지없다. 황교안 대표는 국회를 무법천지로 만든 의원 18명이 검찰에 고발된 데 대해 “고소·고발된 의원들을 반드시 지켜내겠다”고도 했다. 법무장관 출신의 법치의식이라고는 믿기 어렵다. 황 대표는 과거 장관, 총리 시절 걸핏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불법행위는 엄단하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입장이 달라졌다고 어제의 불법행위가 오늘은 헌법수호행위로 둔갑할 수는 없다. 마치 법 위에 군림하는 특권층이라도 된 듯한 행세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28일 회견에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좌파독재 플랜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한국당은 선거제·검찰개혁 법안 저지를 마치 자유와 민주를 위한 투쟁인 양 목청을 높이지만 사실도 아니고 설득력도 없다. 선거제 개혁만 해도 한국당은 줄곧 침묵을 지키다가 여야 4당이 패스트트랙을 추진하자 ‘비례대표 폐지’라는 반헌법적인 안을 불쑥 내놓았다. 공수처 설치도 이렇다 할 대안 없이 시간끌기로 버텨왔다. 그러면서 이를 막는 게 자유민주주의 수호라고 한다. 승자독식의 양당 체제를 완화하는 선거제 개편과 무소불위의 검찰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공수처 설치가 어떻게 좌파 독재이고, 헌법 파괴라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문제는 이런 막가파식 극한 투쟁을 좀체 접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당의 국회 봉쇄는 의회주의,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반민주적 행태다. 그러나 한국당은 사생결단식 투쟁을 이어갈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시민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시민들의 입법 요구도 무시하고 있다. 이런 정치 현실에 시민들은 화가 나고 지친다. 대의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당은 투쟁에 앞서 민심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살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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