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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은 25일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막겠다며 정치개혁특위, 사법개혁특위 회의장을 온종일 점거했다. 새로 사개특위 위원으로 교체된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의 회의 참석을 막기 위해 의원 방을 소파로 틀어막고 6시간 동안 감금하기도 했다. 2012년 국회 선진화법 이후 좀체 볼 수 없었던 ‘동물국회’ 모습이 재연됐다. 의회민주주의의 기본이라 할 대화와 타협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성을 잃은 이들의 행태에 혀를 차지 않을 수 없다.  

패스트트랙은 입법 절차의 끝이 아닌 시작이다.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되면 담당 상임위 심사 →법사위 심사 →본회의 등 최장 330일간의 논의를 거쳐야 한다. 지금부터 1년 가까이 논의를 시작해 보자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법안 수정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데 한국당은 무수한 나날을 흘려보내다 입법 절차가 시작되자 국회 보이콧을 선언하고 장외투쟁에 나섰다. 벌써 몇 번째 보이콧인지 세기도 어렵다. 한국당은 앞으로도 회의가 열릴 때마다 우르르 몰려가 회의장을 틀어막을 것인지 묻고 싶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23일 국회에서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선거제와 공수처법 패스트트랙 철회를 요구하는 손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선거제도를 개혁하려는 근본적인 이유는 유권자의 지지만큼 의회권력을 배분하는 데 있다. 그동안 선거제 개혁의 대의에도 불구, 번번이 불발된 것은 승자독식 소선거구제의 수혜를 누려온 거대 정당의 반대 탓이었다. 좋은 정치는 유권자들의 정치적 의사나 소망이 민심 그대로의 비율로 의회에 반영되는 것이다. 이를 반대하는 건 어떤 이유를 대든 기득권 지키기에 불과하다. 공수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은 검찰에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키고 상호 견제와 균형을 통해 권력남용을 막을 수 있도록 바꾸자는 게 핵심이다. 이번 합의안에 부실한 점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앞으로 추가 협의를 통해 개혁의 완성도를 높이면 된다. 공수처를 지지하는 여론은 80%가 넘는다. 이게 민심이다. 시민을 대표하는 의원들이 시민의 입법 요구를 무시한다면 그는 도대체 누구를 대표하는 것인가.  

많은 시민들은 한국당이 새 지도부 진용을 갖춘 뒤 제대로 된 가치와 정책을 가지고 바로 서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한국당이 보여준 막무가내식 반대는 보수의 품격과 거리가 멀고 지지층마저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이런 싸움은 한국당의 외연 확장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당이 대안정당으로 부상하지 못하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정부·여당 실정의 반사이익으로 얻은 지지율 반짝 상승에 취해 구태를 되풀이한다면 총선 승리와 수권정당의 꿈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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