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지난 9월28일부터 시행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로 대한민국은 새로운 출발점 위에 서 있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김영란법은 강제력을 띤 규범으로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김영란법 자체에 대한 여러 문제제기가 있지만, 법 시행과 관련해 몇 가지 아쉬움이 드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어찌보면 초기에 지불해야 할 비용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도 이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김영란법 시행에 앞서 지난 1년6개월의 유예기간을 무의미하게 소비해버렸다. 김영란법은 정확하게 2015년 3월27일 공포되었고, 법 부칙 제1조는 ‘이 법은 공포 후 1년6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쉽게 말해 1년6개월간의 유예기간을 둔 것이다. 하지만 올해 7월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이 나오기 전까지 법의 내용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자세한 설명을 들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갑작스러운 법 시행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 두는 것이 유예기간이다. 그런데도 법을 집행하는 기관, 법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알려야 하는 기관이나 단체 그 누구도 1년6개월 동안 무엇을 했는지 아는 국민은 거의 없다. 그나마 헌법재판소 결정이 선고된 이후 기사가 쏟아졌지만 법 시행을 불과 두 달밖에 남기지 않은 때이다. 두 달 사이에 수많은 사례들이 등장했지만 습득의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1년6개월 정확하게 552일이 허공으로 날아가버린 것이다.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는 자신의 법해석 권한을 사실상 방기하고 있다. 법률해석에서 기본적인 것은 시행기관의 해석이다. 법원의 판단 역시 중요하다. 그럼에도 법원은 시행기관의 해석 내용을 의도적으로 부정하면서까지 무리한 해석은 하지 않으려 한다. 실제로 대법원 판례를 해설한 대법원 공식 자료 등을 보면 법원이 관련기관의 유권해석을 중요한 참고자료로 삼고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김영란법의 제1차적 해석기관인 권익위는 ‘향후 법원의 판례로 해결될 것이다’라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법원은 사건의 시비를 가려내는 곳이지, 법을 지켜야 하는 사람들에게 가이드라인을 내려주는 기관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권익위는 자신의 역할을 법원에 전가시키고 있는 것이다.

행정부처의 경직된 법 적용도 문제다. 법 집행의 혼선과 이에 따른 부작용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각 부처의 입장을 보면 지금까지 당연히 허용돼 왔던 행위들을 마치 김영란법 시행 하나로 모두 불법으로 보아 제재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선의로 한 행동이 갑자기 문제 행위로 치부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이 지적한 내용은 이를 잘 드러낸다. 선생님에게 캔 커피를 드리면 김영란법 위반이라는 것을 과연 국민이 수긍할 수 있을까. 법 또한 일반인의 상식의 궤를 벗어날 수 없다. 행정기관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금품 제공을 통해 반대급부를 원한다면 문제 삼는 게 마땅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법의 영역으로 포섭시킬 수는 없다. 행정기관도 김영란법을 규제와 처벌의 도구로만 삼을 것이 아니라, 청렴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길잡이로 인식해야 한다. 무분별한 규제와 처벌은 법만능주의로 이어질 수 있고, 오히려 김영란법이 추구하고자 했던 가치를 훼손시킬지도 모른다. 설령 법원에서 구제받을 수 있다 하더라도 그사이 소모된 비용은 어느 누구도 보상하지 않는다.

이처럼 김영란법 시행 과정의 여러 아쉬움이 존재하지만, 아쉬움만으로 머물 수 없다. 부족한 점은 보완하면 된다. 이는 김영란법을 지켜야 할 사람과 집행해야 할 기관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다. 초기의 불안정을 조속히 극복할 수 있다면 김영란법은 그 가치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김철 법무법인 이강 변호사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