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국민’이라는 말이 부쩍 많이 쓰이고 있다. 대통령의 국정연설에서나 쓰일 법한 이 용어가 도처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안철수 의원이 새로 당을 만들어 ‘국민의당’이라고 하더니, 최근 개헌에 관심을 갖는 정치인들이 만든 단체도 ‘국민주권’이라 부른다. 박원순 시장도 ‘국민권력’을 강조하고, 출범을 앞두고 있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싱크탱크도 ‘국민성장’이라 했다. 대중문화 쪽에서 이 표현은 더 자연스럽다. 국민가수, 국민배우, 국민여동생, 심지어 국민한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고 특정 영역을 대표하는 상징성을 ‘국민’이라는 수식어로 공유하는 듯하다.

언어는 시대를 반영한다. 근대민족국가의 구성원을 ‘국민’이라 부르지만, 우리에게 ‘국민’은 산업화 시대의 국가동원체제를 떠오르게 하고 박정희 독재를 떠올리며 국민교육헌장과 국기하강식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국민이라는 개념은 근대성과 보수성, 강제성이 응축된 국가주의를 반영한다. 진보적이거나 젊은 세대일수록 이 개념에 거리를 두기 마련이다. 게다가 오늘날과 같이 탈영토주의를 지향하는 지구화, 지방화 현상이 동시적으로 확장되는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한물간’ 개념으로 간주될 수 있다.

[장도리]2016년 10월 14일 (출처: 경향신문 DB)

그런데 대중의 지지와 선택을 추구하는 집단의 명칭이나 대중의 문화적 욕구가 가장 민감하게 흐르는 쪽에서 국민이라는 용어가 되살아나고 있다. 언어에 내재된 의미는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경향이 있다. 같은 개념이라도 서로 다른 시대의 사회적 의미가 반영되면 시대적 변용이나 세대적 변용이 있을 수 있다. 국민이라는 개념의 부활에서 나는 언어의 시대적 변용을 실감한다. 구한말에 이어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은 근대민족국가 건설에 대한 강렬한 바람을 가졌다. 이 시기에 국민은 무엇보다 ‘열망의 언어’였다. 해방 후 분단과 반공이데올로기로 강제된 이승만 독재와 박정희 개발독재의 시대에 국민은 국가동원의 수동적 대상이었다. 이 시기에 국민은 ‘복종의 언어’였다. 열망의 언어가 복종의 언어로 변용된 이후 다시 시대가 바뀌면서 ‘국민’은 과거의 언어가 된 듯했다.

우리에게 민주화가 진전되던 시기 세계 질서는 신자유주의적 시장의 시대로 전환했다. 우리 사회는 국가부도 사태를 겪으며 무자비한 시장의 질서로 빠져들었다. 거칠 것 없는 금융자본의 흐름을 타고 문화 또한 국경을 넘어 빠르게 교류하는 이른바 지구화시대가 되었다. ‘국민’은 일국적 단위의 국가구성원을 의미하는데 이 국민의 기반이 되는 일국적 사회질서가 해체되기 시작한 것이다. 민주화시대와 중복된 이 시기에 시민이 강조되고 ‘지구시민’이란 표현도 등장했다. 어느덧 국민이란 용어는 변화된 질서에 어울리지 않는 낡은 언어가 되고 말았다.

거북한 구시대의 언어가 되었던 ‘국민’이 다시 귀환한 시점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대체로 2002년 월드컵에서 거대한 응원군중이 ‘대한민국’을 외치며 눈물 흘리고 태극기를 몸에 휘감아 의상으로 입던 즈음이 아니었나 싶다. 하나의 국민이 되는 뜨거운 공동성을 스포츠 응원으로나마 확인하는 감동의 순간을 맛본 것이다. 이렇게 국민의 관념은 다시 귀환했으나 현실은 가혹했다. 두 번의 보수정권에서 국민을 돌보는 국가의 존재는 없었다. 국민이 버림받는 현실이 반복되었다.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결정에 주권적 국민은 없었다. 세월호의 대한민국, 메르스의 대한민국, 경주 지진의 대한민국, 사드 배치의 대한민국, 백남기 농민을 죽인 대한민국에서 국민은 버려졌고 국가는 없었다. 강한 자와 가진 자만이 살아남는 정글과도 같은 ‘헬조선’에서 정부는 국민을 살리는 데 관심이 없다. 미래 없는 불안이 가득 찬 우리 시대에 정부는 전쟁의 공포마저 가중시키고 있다. 국민의 삶 따윈 안중에 없다. 마침내 국민은 제도와 권력의 장식이 되고 말았다. 시대의 거리에 버려진 국민의 신세가 참담하다.

버림받은 삶의 현실이 ‘국민’을 다시 부른 셈이다. 모든 세대가 예외 없이 삶에 지친 분열과 불안의 시대에 따뜻한 국가공동체의 존재를 떠올리며 국민은 일종의 ‘치유의 언어’가 되어 돌아왔다. 보살펴 줄 국가 없는 국민에게, 그리고 국민 없는 국가의 싸늘한 권력의 시대에 공동체의 온기를 담아 우리가 ‘국민’임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자격과 권리와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우리에게 국가공동체의 주인임을 떠올리게 하고 진짜 국민이 되는 길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은 시대의 상처를 끌어안는 치유의 언어가 된 셈이다. 삶에 지쳐 앞날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치유하는 진짜 국민의 시대가 열렸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조대엽 고려대 교수·사회학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