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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5일 치러진 네덜란드 총선에서 극우자유당(PVV)은 예상과 달리 총 150석 중 20석밖에 차지하지 못했다. 난민 위기와 테러 위협에 대한 적극적 대응을 표방한 네덜란드 극우자유당의 성패는 향후 유럽 각국의 선거를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그렇다면 유럽을 휩쓸고 있는 극우의 기세는 누그러질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지만 정권을 교체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60년 전 유럽인들은 파시즘과 같은 극단주의가 가져온 증오와 파괴의 역사를 종식시키고자 유럽의 통합을 시도했다. 통합 과정에서 극우세력은 친유럽주의자가 되기도 했지만 유럽 정치의 주변으로 후퇴하거나 사라졌다. 하지만 1990년대를 기점으로 오스트리아 하이더의 자유당(FP), 프랑스 르펜의 민족전선(FN), 네덜란드 헤이르트 빌더르스의 극우자유당(PVV), 핀란드의 진정한 핀란드인(TF), 덴마크 인민당(DP)과 같은 극우정당은 유럽 정치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동유럽 국가인 폴란드에서도 극우정당인 법과정의당(LJP)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주목할 것은 극우의 재등장 배경과 이데올로기가 무엇이든 간에 이들이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목표는 유럽 통합에 대한 반대 혹은 저항이라는 사실이다.

브렉시트 이후 통합의 미래에 관한 회의주의와 함께 극우의 재등장과 영향력 확대라는 부정적 현상 또한 정치적 담론의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유럽연합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열린 사회’를 지향한다면, 극우는 민족주의라는 울타리를 친 ‘닫힌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유럽연합이 ‘유럽화(Europeanization)’를 통해 ‘하나의 유럽’을 추구하고 있다면 유럽의 극우정당들은 민족정체성과 배타성을 강조하면서 유럽화에 저항하고 있다. 유럽연합이 극우를 유럽의 파괴자로 규정한다면, 극우는 유럽연합이 ‘민족의 혼’을 빼앗아가고 있다고 비난한다. 유럽 극우세력은 주류 정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약할지 모르지만 거의 모든 지역에서 점점 그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동유럽 국가들의 경우 더 급진적인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다.

극우정당의 영향력 확대는 유럽 통합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나타나는 괴리 때문이다. 즉 유럽연합이 ‘더욱 긴밀한 연합’을 추구하면 할수록 극우정당들의 활동 공간은 더욱 넓어질 수 있다. 유럽연합이 확대와 심화를 추구 할수록 극우는 더욱더 성장할 기회를 얻을 것이고 더 많은 저항을 할 것이다. 따라서 이번 네덜란드 총선에서 극우당의 패배는 첫째, 브렉시트와 유럽연합이 60년 만에 처음으로 통합의 속도를 조절하고 국가별 정책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방안인 ‘느슨한 연합’ 추진과 연관이 깊다. 둘째, 극우정당들에 의제를 선점당한 기존의 정당들이 그들의 의제를 수렴하여 스스로 ‘우경화’되었다는 점이다. 셋째, 국민들이 집권정당과 극우정당 간의 사안별 동맹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투표를 했다는 점이다.

한국 역시 최근 급격한 정치·경제적 발전으로 유럽에서 극우정당이 성장한 배경과 유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실업률 증가, 이민자 증가, 다문화 사회로의 진입 등 극우세력 성장에 적합한 조건들이 나타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일이 5월9일로 확정되었다. 각각의 대선후보의 공약을 철저하게 검증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종서 | 유럽학회 교육협력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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