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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16일.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울컥한다. 하는 일이 그렇다 보니 신문 몇 쪽을 채워야 할 초대형 참사 기사를 어떻게 구성해 마감 시간에 맞춰 완성해야 할지 고민하는 데 정신이 없었다. 그 와중에 틈틈이 보이는 TV뉴스특보는 도저히 이해가 안됐고 분노가 솟구쳤다. 폭풍우 치는 대양 한가운데도 아니고 배가 폭탄에 맞아 순식간에 폭발한 것도 아닌데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 있나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수면 위에 선수 부분만 삐죽 튀어나와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 안에 아직도 살아 있을지 모를 수백명이 떠올라 우리들의 무능에 너무 속이 상했다.

지난달 23일 세월호가 수면 위로 보이기 시작하자 3년 전 가라앉을 때 모습이 오버랩됐다. 그러면서 다시 심장이 쿵쾅거리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렇게 결국 세월호는 1081일 만에 기나긴 고통의 항해를 끝내고 귀항했다.

하지만 아직 돌아오지 못한 9명의 미수습자가 남아 있다. 그들 중에는 자신의 구명조끼를 제자에게 벗어주고 다시 배 안으로 들어간 양승진 선생님과 제자들의 탈출을 돕느라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마지막 문자메시지를 보낸 고창석 선생님도 있다.

세월호가 거치될 목포신항 앞에서 2일 세월호 잊지않기 목포지역공동실천회의 소속 시민단체회원들과 시민들이 미수습자 수습과 진실규명을 염원하며 노란 우산을 펼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두 선생님뿐이 아니다. 제자들을, 친구들을, 승객들을 구하러 그 무서운 배 안에서 고군분투하다 차디찬 시신으로 돌아왔던 선생님, 학생, 승무원들은 여럿 더 있다. 카카오톡에 “너희부터 나가고 선생님 나갈게”라고 제자들을 격려했던 최혜정 선생님, 어머니와의 전화에서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혀야 한다”고 한 뒤 남자친구에게 “구명조끼를 입지 않고 있어. 미안하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던 전수영 선생님, “내 구명조끼 네가 입어”라고 반 친구에게 구명조끼를 건네고 다른 친구를 구하러 간 정차웅 학생,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건네면서 “선원은 맨 마지막에 나가는 거야”라고 했던 박지영 승무원….

우리들은 이런 상황을 목격할 때 종종 그리 높지 않은 차원의 실존적 질문에 맞닥뜨리곤 한다. ‘나라면 그때 과연 어떻게 했을까.’

나라면 그때 내가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벗어줄 수 있을까. 과연 저들을 캄캄한 바닷속으로 다시 들어가게 한 힘은 무엇일까.

프랑스 작가 앙드레 말로와 일본 작가 고미카와 준페이가 20여년의 시차를 두고 각각 쓴 제목이 같은 소설 <인간의 조건>은 완전히 다른 스토리지만 결정적인 공통점이 있다. 바로 주인공(들)이 죽는다는 거다. 말로 작품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카토프는 적군에 잡혀 모진 고문을 당한 뒤 증기기관차 화덕에 던져져 화형되기를 기다리다 마지막 남은 자살용 청산가리를 동료에게 양보한다. 동료는 “화덕에 던져지면 눈도 타겠죠. 배도 타겠죠”라며 두려워하고 있었다. 고미카와 작품의 주인공 가지는 패잔병으로 쫓기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다른 패잔병들처럼 약탈과 범죄, 비열한 배신으로 연명하는 것을 거부하고 눈 쌓인 만주 벌판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사랑하는 아내를 그리워하며.

작품들이 암시하는 것처럼 인간을 동물과 차별시키는 ‘인간으로서의 조건’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는 계기 중 하나는 죽음의 순간이다. 살고 싶다는 생존에 대한 욕구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이 공유하는 본능이다. 하지만 그 생명연장의 욕구를 이겨내고, 죽음에 대한 공포를 무릅쓰고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가장 큰 본질적 특징인 이성(理性)에서 나오는 것이다.

사실 순수한 사람들은 자신이 희생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남들이 보기에 희생으로 보이는 일을 한다. 내가 희생한다는 ‘억울한’ 생각에 젖어 있다면 정말 몸을 바친 선행이 나오긴 어려울 것이다.

이마누엘 칸트의 말을 빌리면 이런 인간의 선행은 동정심 등과도 구분된다. 어떤 선행을 할 때 나에게 유용할 거라 계산하거나 또는 나중에 보상받을 것을 염두에 두거나, 타인을 돕는 것 자체에서 쾌락을 느끼는 것 등과 구분돼 순수하게 마음에서 나오는 의무감에서 결정된 행위라는 것이다. 그렇게 세월호의 ‘인간’들은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경외로운 마음속 도덕법칙의 명령에 따라 이성적 행동을 한 것이다.

세월호가 돌아오듯 야만이 가고 이성의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 그런데 우리 앞엔 대선이 다가오고 있다. 벌써부터 대선판은 이성이니 도덕법칙이니는 내팽개쳐 버린 것처럼 보인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 있고, 그 별빛이 길을 환하게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이기고 지는 것보다, 누가 되고 안되고보다 이 어두운 시대에 우리의 길을 비춰줄 별빛을 보고 싶다.

김준기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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